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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어딘지 알아?'

승마와 아이들 - 교감

by 로그모리
교감 - 허리가어딘지알아3.png


'아이들에게 말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 문장은 상상 이상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절대적 '무지' 와

무조건적인 '수용' 이다.


때문에 관계의 정의를, 새로 해야만 한다.



아이들은 배움에 있어, 판단의 개념이 없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데 벽이 낮고,

동시에 이해하지 못한다.


알 지 못하기에,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승마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허리를 펴고 앉는 자세' 이다.


이에 대해 성인에게 설명하고자 하면, 할 말이 많다.


무게중심을 아래로 내리기 위해,

허리에 가해지는 데미지를 최소화 하기 위해,

전후좌우의 밸런스를 잘 잡기 위해 등등

개개인의 자세에 맞춰 부연설명을 할 거리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전부 무의미한 이야기다.

'펴다' 라는 단어를 모를 수 있고,

심지어는 '허리'를 처음 들어보기도 한다.


"허리가 어딘지 알아?" 라고 물은 뒤,

티없이 해맑은 아이의 표정을 보면 나조차도 이게 무슨일인가 싶다.


혹 이와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축하한다.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쳐줄 수 있는 첫 단추를 이미 꿰었다.



다소 폭력적인 표현을 사용했지만,

정확하게 '절대적, 무지' 이다.


절대적 무지를 눈 앞에서 겪었을 때,

자연스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될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마침, 이 아름다운 존재는

더 알 수 없는 존재의 위에 앉아 있었다.


꽤나 많이 보아온 광경이 되어버린 지금도,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조합이다.


생후 50개월 언저리의 아이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말 의 모습이란.


동시에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게 같다면,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흔히 우리가 동물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반응.

강아지나, 고양이를 마주하면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받아들이고, 아끼고, 사랑해준다.


내가 마주한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이해 대신 받아들이고,

다른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존재다.


비로소, 당황스러움 대신 해야하는 것들이 명확해졌다.

눈을 맞추고 몸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보기 시작했으며,

긍정과 부정의 표현이 어떤 것인지 찾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을 '교감' 이라 표현한다.

소통이나 대화보다 보다 본질적이고, 본능적인 관계.

나는 아이들과 교감을 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생각을 서로 나눌 수는 없지만,

즉각적으로 서로의 의중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신체로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들을,

보물같은 존재들에게 다시금 배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하던가

아니,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한없이 이쁘게 보이기도 하다가,

너무 서운해서 보기 싫다고 울다가,

이내 고마워하고 사랑한다 이야기 한다.

(말에게 보이는 반응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나 역시도 교감을 하는 존재구나,

새삼 낯설고 설레도록 만든다.



이 소중한 존재들은 흡수하는 속도 또한 아주 빠르다.

허리를 펴는 모습을 보여주면 맑은 눈망울로 쳐다보며,

행동을 따라하며 교정한다.

"이건 굴레야, 따라해볼까?" 라고 하면,

냅다 "굴비!!" 라고 외친다.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하겠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


'무조건 적인, 수용'

왜? 라는 생각이 없이 그저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따라한다.


사실 이러한 부분 덕에,

그 어떤 성인 회원들보다 아이들의 배움의 속도가 빠르다.

어릴 때 배우는걸 따라갈 수 없다고 표현하는 이유를

매일 눈 앞에서 마주한다.


그저 따라하고 받아들이는 이 반응은

나에게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진심을 다해 알려주도록 한다.

(물론, 모두에게 나는 진심을 다해 전달하고자 한다.)


순수한 존재를 마주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경험이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기 어렵다,

이런 표현들이 몸으로 다가오는 느낌.



'교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미 너무도 익숙하고 잘 이해하고 있다 여겼다.


진정으로 교감을 해야하는 상황아래,

직접 겪어보고 나서는 '내가 아직 다 알 수가 없는 개념이구나'

'비유가 아닌 설명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들이 생겼다.


감사하게도, 현재에도 교감하는 방법을 온몸으로 알려주고 있다.

나를 미워하기도, 좋아하기도, 싫기도, 기쁘기도 하지만,

그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이 새로운 소통의 방법이,

벅차도록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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