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다른 팀에 있는 동료분과 퇴근 후에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다. 추운 날씨에 뜨끈한 국밥이라니,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달까? 그리고,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사실 지난 회사 생활을 바탕으로 퇴근 후에 동료들과 나누는 대부분의 대화는 회사에 대한 불평 불만이 주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회사에 대한 칭찬을 하기에 바빴다. 옆 자리 테이블에 앉은 분들이 회사원이었다면 우리를 회사 경험이 아직 많이 없는 인턴, 혹은 스톡옵션이라도 받은 스타트업 직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회사에대한 좋은 이야기만 나눴으니까.
내가 동료에게 전한 이야기 중에 큰 비중을 차지 했던 건 현재 속해있는 팀의 팀원들에 대한 말이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상대적으로 주니어가 많아 내가 이 팀에서 업무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가득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걱정이 모두 기우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지금은 팀원들의얼굴을 떠올리면 괜스레 웃음이 나오고 든든하다는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마운 것은 회사생활을 함에 있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점이 많았고, 좋은 동료들 덕에 회사원으로서의 나의 애티튜드도 점점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크다. 돈을 받으면서 교육까지 받게 되다니. 오늘은 몇 개월간 팀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내가 느낀 몇 번의 감동적인 경험들을 기록해볼까 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주간에 나는 간만에 본가에 내려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아직 수습기간이 끝나지 않아 연차를 내기는 조심스럽고, 마침 크리스마스가 월요일이라 연차 없이 편하게 집에서 쭉쉬고 싶었달까. 서울과 본가인 지방이 꽤나 멀어서 KTX를 평소에 이용하는데 이 날은 시차 출근제를 활용해 일찍 출근하고, 또 일찍 퇴근하기 위해서 오전 8시가 되기 전, 사무실에 도착했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후 늦게 진행된 주간 미팅에서 기획안에 대해 적지 않은 수정 요청 사항을 받게 되었다. 적어도 저녁 6시 전에는 사무실에서 출발해야 서울역에 제 때 도착할 수 있는 상황이라 마음 속에서 차오르는 불안감에 1분 1초가 초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수정 사항을 어찌저찌 마무리하고 팀장님에게 컨펌을 요청한 후에 나의 불안감은 더 커져갔다.
'30분 안에 사무실에서 나가야 하는데 팀장님이 왜 바로 컨펌을 안해주시지?'
'20분 안에 나가야...'
'아니 10분 안에는 제발ㅠㅠ...'
'...하 모르겠다.'
팀장님은 곁눈질로 슬쩍 봐도 굉장히 바빠보이셨고,내가 일찍 퇴근하기 위해서 팀장님을 재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울적해진 마음을 다잡고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중 옆 자리에 있던 인턴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00님, 지금쯤이면 출발하셔야 되는거 아니에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전후사정을 설명할 수 밖에 없었고, 나의 얘기를 듣곤 한결 더 차분한 말투로 대답을 건네왔다.
'컨펌은 내일까지 받아도 괜찮아요. 얼른 출발하세요. 지금 출발하면 기차 탈 수 있을거예요.'
그리고, 이 말을 건네면서 그 사이에 회사에서 서울역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소요되는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던 친절한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빠르게 사무실에서 나올 수 있고, 원래 예매해 둔 6시 기차를 늦지 않게 탈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퇴근까지 나의 일을 끝내기에 급급한 것이 일반적인지라 다른 동료들을 챙기는 것이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아직 대학생인 그녀가 보인 친절한 말과 행동에 나는 조금 더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 입사하면서 실무자 면접 당시, 현재 팀에 있는 팀장님과 마주한 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에게 건네는 질문 하나, 나의 대답 하나 허투루 듣지않고 귀 기울여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눈빛만 봐도 얼마나 자신의 일에 진심이고 야무진 사람인지 200% 느낄 수 있었는데 실제로 회사에 입사하고는 나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에 큰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그와의 한 일화는 나에게 팀장의 정석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각인 시켜준 경험이었다. 그 날은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가 오픈하는 날이라 유독 바쁘고 또 정신이 없었다. 오픈 당일이라 체크해야할 것은 산더미인데, 아직 업무 적응이 완벽히 되지 못한 탓에 회사 파트타이머 분들에게 요청해야 하는 일들이 누락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순간 정신이 멍해지면서 이걸 어쩌지 라는 생각만 머릿 속에 가득했고, 이 사실을 조심스럽게 팀장님께 말씀 드리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직접하면 되는 것이고 자신이 알려주겠다고 대답을 건네셨다.
그리고, 본인의 바쁜 일을 쳐내면서 나에게 메신저로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수시로 모니터로 진행 상황을 체크해주셨고 결국 무사히 오픈까지 마무리할 수있었다. 정신차려보니 2시간이 지났을 만큼 나에겐 10분처럼 짧게 느껴졌던 120분의 시간이었다. 끝나고 어찌나 진이 빠지던지 머리가 멍하고, 몸에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을 경험했다. 그리고, 팀원들의 업무를 전부 체크해주시곤 퇴근하는 팀장님에게 오늘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했지만, 그의 답변이 나를 더 멍하게 만들었다
'00님,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집에가서 편하게 쉬어요~! 고생했어요'
이 말과 함께 내 머리를 쓰담아주시는데 순간적으로 팀장님은 사람이 아니고 천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 실수한 내 탓에 사실 팀장님이 나보다 더고생했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런 나에게 되려 웃으면서 저런 말을 건네다니..팀장의 정석이 있다면 이 모습이 아닌걸까 싶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경력이 많더라도 태도가 반드시 경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연차가 높지만, 자신의 기분을 부하직원에게 푸는 사수들도 있고 그 때문에 직원들이 눈치를 보면서 회사 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쩌면 그런 사수들을 경험했기에 지금의 팀장님에게 느끼는 감동이 더 배가 되지 않나 싶기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힘든 상황 속에서 내색않고 웃으며 부하직원을 챙기는 모습은 회사 동료를 넘어서 한 사람으로서도 반드시 배우고 싶은 태도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감사한 팀원들이 있기에 출근길 발걸음이 한 결 더 가벼운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