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간 나는 유사 번아웃 증상을 겪고 있다.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스스로 위축되는 순간이 많았다. 이직 후에 천국에 온 것 같은 기쁨에 젖었던 것도 잠시, 요즘은 쓰디쓴 회사의 현실을 매일 마주하고 있는 중이다. 꽤나 비현실적인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그토록 좋아하던 재택근무도 지칠 때로 지친 나의 기분을 어루만져주진 못하는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속상할 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술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여기저기 술 약속만 많이 만들고 다닌 적도 있었다. 사실 술을 대단히 잘하는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자존심은 쎄서 원래 마시는 것보다 늘 더 마시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했다. 하지만, 술이라는 수단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주지 못했고, 대신 운동복을 대충 갖춰 입고 집 앞 하천에 있는 산책로를 1시간 이상 걷고 뛰면서 답답한 맘을 달랬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이유 없이 찾아온 이 무거운 감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스스로 답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원래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속 시원히 말하면 늘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짧게는 몇 주 정도 괜찮았던 게 정상인데, 지금은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다시금 갑갑한 마음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회사 밖 행복 찾기> 프로젝트랄까. '난 어떤 순간에 행복할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뭐지?' 막연히 "행복"이라는 감정에 집중하니, 더 답이 안 나오는 것만 같아서 순간순간의 내 모습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내 스스로 찾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1. 스타벅스의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먹을 때
(원래도 좋아했는데, 쿠앤크 맛으로 리뉴얼되고 더 좋아졌다. 집에서 만들어 보고 싶어서 레시피도 찾아봤는데, 결론적으로 그냥 사 먹는 게 맞는 거..같다.)
2. 드라이브할 때
(특이한 점은 내가 운전하는 게 아닌 조수석에 타서 창문 열고 바람을 맞을 때가 너무 좋다. 시원해서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랄까.)
3. 러닝을 끝냈을 때
(요즘은 헬스장도 야외 러닝도 잘 안 하지만, 나만의 목표를 세워놓고 딱 끝냈을 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묘한 쾌감이 있다. 난 땀 흘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4. 천국의 계단 40분~1시간 탔을 때
(누군가는 지옥의 계단이라고 말하지만, 난 이상하게 이 기구가 너무 좋다. 솔직히 올라가면 하기 싫고 힘든 거 맞는데, 다 끝나고 거울에 비친 땀에 쩔어버린 내 모습이 신기하면서 멋지게 느껴진다. 어쨋든 힘들지만 목표한 걸 딱 해냈다는 것에서 오는 쾌감!)
5. 자전거를 탈 때
(드라이브랑 비슷한 이유로 바람이 내 피부에 닿는 그 기분이 너무 좋다. 어릴 때도 자전거 타는 걸 참 좋아했는데, 자전거는 탈 때마다 재밌다. 다만 인도 대신 하천 산책길이나 자전거 도로에서 눈치 안 보고 슝슝 나갈 때가 진짜 짜릿하다.)
6. 책의 특정 구절이 마음에 와닿을 때
(책을 읽다보면, 그냥 읽게 되는 문장도 있지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충만해진다는 기분을 주는 명문장들이 있다. 어쩌면 그런 확실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책 한 권을 읽는 시간이 더 유의미한 게 아닐까 싶다.)
7. 내가 한 요리가 맛있을 때
(한 3년 전만 해도 나는 요리하는 걸 꽤나 좋아했다. 퇴근 후에,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면서 마트에서 신나게 장보고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이 딱! 내가 생각했던 혹은 그 이상의 맛일 때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기분이었달까. 한때 그렇게 요리를 하면서 꽂혔던 음식이 알리오올리오 였는데, 매 주 마다 꼭 먹을만큼 내 입맛을 사로 잡은 맛이었다.)
8. 향냄새를 맡을 때
(나는 요가원 가는 걸 참 좋아했다. ‘요가가 좋았나?’생각해 보니, 들어갈 때부터 나는 그 향냄새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절에 가는 것도 참 좋아한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8가지를 적고 나니, 문득 든 생각은 내가 그동안 우울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달까. 현생에 치여서, 당장 피곤한 내 몸 상태에 밀려서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한편에 제쳐두고 살았지 않았나 싶다.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내가 퇴근하면 소파에 시체처럼 누워있곤 했으니까. 당분간은 아무리 지쳐도 조금씩 운동을 다시금 시작하고, 식비 아낀다고 대충 챙겨 먹지도 말아야지. 남은 2월은 내 행복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으로 조금씩 채워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