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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Mar 05. 2024

이직 후에 내향인이 되었다

    몇 개월 전에 환승이직을 준비하면서 내 스스로 세웠던 몇 가지 기준 중 하나는 바로 회사의 규모였다. 스타트업을 지향하지만 조금 더 체계적인 환경에서 배우고 싶었기에 회사의 매출도 직원 수도 배로 많은 곳들만 지원했고, 결국 내 목표는 현실이 되었다. 처음 이직한 회사에 출근했을 때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직원 수에 적지 않게 당황하기도 했다. 매 번 출근할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니, 언제 이 사람들의 얼굴을 다 익히지?라는 고민을 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습 기간이 지난지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모르는 얼굴들 투성이다. 양치를 할 때면, 여자 직원분들과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것이 소소한 재미 중 하나였는데, 요즘은 양치를 할 때 나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거울만 보면서 양치에 열중하곤 한다.


    다행히도 둥글둥글 모난 구석이 없는 팀원들 덕에 사무실에서는 꽤나 편안하게 지내지만, 아직도 팀원들 외에 다른 회사 동료분들은 나에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른 팀에 있는 한 동료분의 제안으로 사내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다. 가입 전에 팀원들 외에 다른 분들과 친해질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이 가득했지만, 이상하게도 모임이 있는 날엔 늘 많은 업무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초과 근무를 하지 않은 날에는 정시 퇴근을 사수했지만, 몸이 너무 지쳐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혹시나 해서 화장실로 뛰어가 화장을 다시 고쳐봐도 묘하게 풍겨져 나오는 피곤함과 찌듦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정시 퇴근을 한 날도 결국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고, 곧장 퇴근길에 올랐다.


    이전 회사에서만 해도 회사 동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나에겐 두근거림 그 자체였는데,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를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정말 내향인으로 변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쁜 업무 탓일까? 늘어난 인원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내가 변해버린 걸까? 이번에 이직한 회사는 못해도 2-3년은 근속해야지라고 다짐했는데, 예상보다 고된 업무 탓에 빨리 지쳐버린 내 모습이 속상하기만 하다. 어쩌면 더이상의 잉여 에너지가 없어, 나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강제로 내형형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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