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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자고 하는 의사

by 이시호

'지켜보자' 의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경과 관찰'이라고 표현하는데, 보통 두 가지 상황에서 쓰인다. 환자가 아프다고 왔는데 의사 기준으로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판단될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켜보자고 할 때가 많다. 다른 경우로, 죽어가던 환자를 간신히 살려놓은 다음에 중환자실 앞에서 보호자들에게 설명할 때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자고 할 때가 많다.


완전히 다른 상황이지만, 지켜보자는 말에 담긴 의미는 언제나 같다. 세 가지 뜻이 담겨 있는데, 첫째로 지금 당장은 흔히 '바이탈 사인(vital sign)'이라고 부르는 '생체 징후'가 안정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둘째로 지금 상태에서 호전될 가능성과 악화될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셋째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이제 환자의 회복력에 달려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체 징후가 안정적이라는 말은 당장은 생명에 위협이 없다는 뜻이다. 생체 징후를 확인하는 것은 옆 사람이 너무 깊이 잠들어서 죽은 거 아닌가 싶을 때 코에 손을 대보는 것과 비슷하다. 옆 사람이 죽었나 싶을 때는 그의 생존만이 궁금하지, 그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생체 징후를 확인하는 것은 그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아보기 전에, 정상적으로 잘 살아있는가를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생체 징후가 안정적이라면, 정상적으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의 일반적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생체 징후가 불안정하다면 이를 안정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고, 심하게 불안정하다면 당장 처치를 해야 하는 '응급환자'로 분류된다. 응급환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의 환자로, 진단과 치료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지켜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 뜻이다. 의료진의 응급 처치에 의해 생체 징후가 안정되어야만 진단과 치료를 시행하고 지켜볼 수 있게 된다.


호전될 가능성과 악화될 가능성이 모두 존재하는 것은 의학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병이란 게 원래 그렇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좋아지는 병도 있고, 반대로 심해지는 병도 있다.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은 치료에 효과를 보고 회복되지만, 어떤 사람은 치료가 잘 듣지 않고 점점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병이 처음 진단됐을 때 이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 환자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치료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병이 진단된 후, 우선 현 상태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조치를 취하고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일정 기간 지켜보는 것이다. 가벼운 병으로 생각되어 집에 돌려보내고 3일 간 지켜볼 환자가 있다면, 혹시 모를 큰 병의 증상에 대해 설명해주고 그 증상이 발생하면 병원에 즉시 오도록 교육한다. 위험한 병으로 생각되는 환자라면 적절한 처치를 취하여 안정시킨 뒤, 생체 징후를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고 완전히 안정됐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지켜보는 과정을 거친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면, 마지막에는 환자의 회복력에 기대야 하는 시간이 온다. 이 세상에는 아직 만병통치약이라든지, 완벽한 수술 같은 것은 없다. 항생제는 세균의 힘을 약하게 만들 뿐, 인간의 면역력만이 몸에 들어온 세균을 완전히 죽일 수 있다. 심장이 약하게 뛰는 환자에게 억지로 심장을 뛰게 하는 약을 투여하면 시간을 벌 수는 있지만, 심장이 끝내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면 결국 사망한다. 수술, 항암제, 방사선으로 몸속의 암을 제거했다고 해도, 그 치료법으로 인해 몸이 입은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면 암에 의해 죽는 것보다 더 빨리 사망할 수도 있다.


의사는 환자가 회복하기를 지켜보면서 회복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적당한 수분와 영양을 공급하고,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 약을 투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는 대체로 부수적인 역할에 그치곤 한다. 의사가 돕는다 해도 환자 스스로 회복해내지 못하면 작은 병에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환자의 회복력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요소다. 잘 관리된 몸일수록 회복이 빠르며, 반대로 비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회복이 더디고 병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리하면, 의사가 지켜보자고 하는 경우 우선은 안심해도 된다. 당장 보이는 큰 문제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평생 안심해서는 안된다. 아직 몸에 병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켜보는 시간 동안에는 환자 본인의 역할이 이전보다 커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무리하지 않고 회복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가 "이제 그만 지켜보자, 병원에 그만 와라" 할 때까지 의사의 지시에 잘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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