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여다경이 지선우에게 몸살 기운이 있다며 진료를 받으러 오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지선우는 남편의 내연녀가 여다경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였는데, 2주 정도 몸살 기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첫 질문으로 "술 담배 해요?" 묻더니, 두 번째 질문으로는 "성관계는요?" 물어본다. 여다경이 "그런 거까지 얘기해요?" 저항하자, 기본적인 문진이라고 대답하며 한 발 더 나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 있어요? 여러 명?" 하며 아주 무례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진다. 두 여자의 기싸움 정도로 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은근히 의사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환자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의사들에게는 환자의 사적인 정보를 묻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증상의 원인을 찾고, 어떤 검사를 할지 결정하고, 앞으로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성관계에 대한 질문 이외에도 술 담배는 얼마나 하는지, 가족 중에 환자가 있는지, 최근에 어느 지역을 다녀왔는지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질문이면 그 내용이 얼마나 사적이든 우선 던지고 본다. 특히 임신 가능한 나이의 여성 환자에서는 증상에 관계없이 임신 가능성을 반드시 체크한다. 어떤 약이나 검사는 뱃속의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반드시 처치 전에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의사들이 낯 뜨거운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의대생 시절 교육을 받으면서 낯짝이 두꺼워지기 때문이다. 한 예로, 학생 때 산부인과와 비뇨의학과를 같이 배우는 과목의 별칭(실제 이름은 잊었다)이 무려 '생식기'였다. 이 과목을 한 달 동안 배웠는데, 별칭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마지막 시험을 치고 귀갓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통화하던 한 친구가 "생식기 망했어!"라고 외치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남들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단어가 의사에게는 아주 편한 단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후 하게 되는 산부인과 학생 실습에서는 더 심하다. 교수님이 환자를 보기 전 학생이 먼저 면담하여 산과력을 조사하는데, 별걸 다 물어봐야 한다. 생리 시작 나이부터 해서, 생리 주기, 임신-출산-유산 횟수, 마지막 성관계 날짜 등 꽤 민망한 질문들을 필수로 물어보게 된다. 처음 할 때는 얼굴도 빨개지고 어버버 하는데, 하면 할수록 안정되어서 열 명쯤 넘어간 뒤에는 이름과 나이를 물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교육을 받고 나면 환자에게 할 수 없는 질문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다시 부부의 세계로 돌아가면, 지선우의 질문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 충분히 물어볼만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선우의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환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배려심 없는 태도로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본인에게는 기본적인 문진일지 몰라도, 환자가 민감하거나 불쾌할 수 있는 부분에는 충분히 배려하는 태도를 가지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표현되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환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진료 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교육에서도 역시 그 부분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