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버린 씀씀이
병원의 인턴 월급은 사회 초년생 치고는 많은 편이다. 하지만 주 80시간 근무에 잠자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사회 구성원 모두와 비교하여도 하위권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쓸 수 있을 때 써버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돈이 차곡차곡 모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물론 전자였다. 나의 인턴 당시의 씀씀이를 되돌아본다.
우선 식사. 만 원 이하의 메뉴는 절대 안 먹었다. 혼자서 짜장면 시킬 때도 탕수육은 무조건 함께 시키고, 남으면 버렸다. 하지만 태생이 어디 가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비싼 맛집을 찾아다니지는 않았고, 그냥 평소 가던 식당에서 비싼 메뉴로 시켜 먹었다. 아침에 퇴근할 때도 인턴방에 비치된 시리얼 따위는 안 말아먹고 친구들 모아서 삼겹살에 소맥 말아먹고 들어가곤 했다.
다음은 맥주. 나는 맥주를 워낙 좋아해서 대학생 때 자주 가던, 한 잔에 몇 천 원 안 하는 단골집이 있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돈을 버니까 갑자기 단골집의 싼 맥주가 맛이 없게 느껴졌다.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수제 맥주집 탐방을 열심히 다녔다. 맛도 모르면서 세계 맥주 전문가 행세를 하며 술집에서 맥주로 세계 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 그나마 다행은 가진 주량이 작아서 양주 같이 더 비싼 술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요즘은 구관이 명관이라고 다시 단골집 맥주가 맛있어서 그쪽으로 자주 다닌다.
학생 때부터 취미는 게임이었는데, 자취방 컴퓨터가 변변찮아서 항상 PC방에서 게임을 했다. 그래서 첫 월급을 받자마자 최고 성능으로 컴퓨터를 맞추고, 두 번째, 세 번째 월급으로도 컴퓨터 관련 물품을 열심히 구매했다. PC방 의자, 2개의 모니터, 마우스, 키보드, 스피커까지 최고의 컴퓨터 조합을 완성했다. 그렇게 최고의 게임 환경을 완성했더니, 갑자기 게임이 재미가 없어졌다. 인턴이 되면서 시간이 없어 꾸준히 게임을 하지 못하니 손 감각이 많이 떨어져서 내 실력이 부끄러웠고, 친구들과 근무 시간이 다르다 보니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흥미를 크게 감소시켰다. 지금은 최고급 컴퓨터를 이용하여 주로 글을 적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테리어. 자취방이 남향이라 볕이 잘 들어오는데, 밤새 일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날에는 잠드는 게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나름 비싼 고급 안대를 사 왔는데, 이번에는 안대의 줄이 거슬려서 못 자겠더라. 나는 그냥 얼굴에 달린 눈, 코, 귀, 피부 다 엄청 예민하다. 잠 못 들던 어느 날, 번뜩 좋은 생각이 났다. ‘눈을 가릴 필요 없이 창문을 가려버리면 되잖아’. 바로 집 근처 인테리어 샵에 가서 암막 커튼을 주문했고, 설치 후 수면과 삶의 질이 매우 올라갔다. 인턴 기간 중 가장 만족하는 소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