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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Apr 17. 2020

앰뷸런스에서의 살 떨리는 경험

초고난도 기관 삽관

파견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파견 병원은 응급실 규모가 작아서 초를 다투는 응급 환자는 거의 오지 않는데, 밤 10시쯤 30대 여자 환자가 호흡곤란으로 남편과 함께 들어왔다. 근처에 사는 주민인데 갑자기 숨을 못 쉬어서 남편이 급하게 데려왔다고 하였다. 곧바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진찰을 하였다. 사람의 호흡기는 코, 입에서 시작하여 폐까지 이어지는데, 코와 폐를 ‘기관’과 ‘기관지’라는 구조가 연결하고 있다. 이 환자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빠르게 기관이 좁아지는 ‘급성 기관 협착’이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

 

기관이 좁아지다가 완전히 막히면 아예 숨을 들이마시거나 내쉬는 게 불가능하다. 다행히 환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남았는지 온 몸의 힘을 호흡에만 쓰면서 거친 기침과 함께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산소 포화도를 체크해보니 아직은 정상 범위였지만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기관에 직접 관을 넣어 기도를 유지시키는 ‘기관 삽관’을 고민했다. 하지만 여러 어려운 점이 있었다.   

 

첫 번째로, 기관이 좁아진 상황이라 기관 안에 관이 들어갈 충분한 공간이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관을 억지로 집어넣다가 기관에서 출혈이 생기면, 몇 배는 더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파견 병원은 밤에는 의사가 거의 남지 않아서 그 정도 환자를 감당할 수가 없다. 두 번째로, 기관 삽관을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후에 이어져야 할 환자 처치 역시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관 삽관은 관을 넣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넣은 관을 인공호흡기에 연결하고 중환자실에 입원시켜 최소 몇 시간은 지켜보는 게 정석이다. 파견 병원에는 중환자실은 있지만, 그 정도의 환자를 계속 지켜보면서 케어할 수 있는 인력은 없는 상태였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고민 끝에 우선 염증을 떨어뜨리는 약인 스테로이드를 투여했다. 급성으로 기관이 막혔다면, 염증으로 인한 부종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여전히 힘들게 숨을 쉬었지만 이전보다는 편하게 하면서 기침의 빈도도 줄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급하게 다른 큰 병원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를 ‘전원을 보낸다’고 하는데 작은 병원에서는 흔한 일로, 환자 상태를 설명하고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과정이다. 다행히 30분 거리의 병원에서 받아준다고 하여서, 환자 이송을 담당하는 구급차를 호출했다. 


그리고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에게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관 삽관의 영어)할 줄 알지?’ 하고 물었다. 안 좋은 환자를 전원 보낼 때는 보통 인턴이 함께 구급차를 타고 가며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데, 만약 환자가 차에서 안 좋아지면 내가 기관 삽관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마취과 인턴 돌면서 기관 삽관 경험은 몇 번 있었지만, 마취과의 기관 삽관은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에서 시행하기 때문에 아주 쉬운 편에 속한다. 하지만 매우 빠르게 달리며 흔들리는 구급차에서 하는 것은 기관 삽관의 가장 어려운 경우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혹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환자와 함께 차에 탔다. 보호자는 자가용으로 이동하여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차가 출발하고 인생에서 가장 긴 30분이 시작되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환자가 숨을 잘 쉬는지 눈을 떼지 않고 확인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기관 삽관을 계속 시뮬레이션했다. 보통 구급차 뒤에 타면 멀미가 심하게 나는데, 그때는 멀미가 하나도 안 났다. 다행히 이동하는 동안 환자 상태의 큰 변화는 없었다. 30분 후, 다른 병원에 무사히 도착해서 응급실 의사에게 인계를 해주고 다시 구급차를 타고 돌아왔다. 그때의 그 30분만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후들후들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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