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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Mar 17. 2020

인턴이 되며 쓰게 된 감투

인턴장이 되다

3월 1일 첫 인턴 근무를 시작하기 전, 2월 마지막 2주 동안 사전 교육을 받는다. 1년을 동고동락할 다른 인턴들과 처음 만나는 시간이며, 교육이 끝날 때 인턴장(인턴 대표)을 뽑는 순서가 있다. 보통 우리 병원 인턴은 우리 의대 졸업생이 대다수인데, 그 해에는 유난히 타 의대 졸업생이 많이 지원하여 우리 의대와 타 의대 출신 비율이 반반 정도였다. 어느 때보다 통합과 화합이 필요한 시기로, 인턴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나보다 잘할 사람은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하자면, '옳은 게 옳은 거다'라는 원칙주의자에 더하여,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융통성과 합리성을 갖춘 혼종이다. 인턴 구성원의 다양성이 높은 만큼, 나의 이중성이 빛을 발할 것 같았다. 또한 의대 시절에 유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된 선배 친구? 친구 선배?(동기였다가 1년 선배가 된 친구들)가 많다. 바로 직전에 인턴을 경험한 친구들을 바탕으로 한 인턴 정보력에는 자신이 있어서, 정보 공유를 통하여 다른 인턴 동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다시 인턴장 얘기로 돌아가자면, 인턴장은 일종의 봉사직이다. 별다른 보상 없이 주로 공지 전달, 식사 및 간식 주문의 잡다한 업무를 담당하며, 가끔 누가 사고 치면 상급 레지던트에게 전화가 오기도 한다. 그래서 하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는 자리다. 뜬소문으로는 인턴 평가에 은근히 점수가 추가된다는 내용이 있어 야망을 가진 인턴은 노리는 자리기도 하였다. 내 경우는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선의(善意)가 주된 지원 동기였던 거 같다.


인턴장 선출이 가까운 시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학창 시절에 감투 욕심이 없던 나는 논외로 한 채, 학생회장 출신 동기 한 명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공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병원 직원이 그 동기에게 부탁을 하였고, 여기서 나서야 된다는 생각에 그 친구를 찾아가서 내가 인턴장에 관심이 있다고 조용히 말하였다. 그 친구는 마침 부담스러웠던지 화색을 띠며 나 하라고 하였고, 옆에 있던 날렵한 친구들이 빠르게 소문을 내며 투표도 없이 그대로 인턴장이 되었다.


1년 간의 인턴장 수행을 돌아보면 꽤 잘했던 거 같다. 큰 사고도 없었고, 간식과 회식 메뉴를 잘 선정해서 만족도가 높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괜히 친한 친구들을 덜 챙겨줬다. 다른 의대에서 온 인턴들이 차별당한다고 느낄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나의 역차별에도 항상 똑같이 대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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