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아침 7시부터 인턴 근무를 시작하였다. 당시 인턴은 과거에 비하여 상당히 인간다워진 상태로, 법으로 정해진 주 80시간 근무를 최대한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수년 전만 해도 2월 중순부터 근무를 시작하고, 주 100시간 이상 근무를 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모름지기 인턴이라는 존재는 병원 내에 항상 존재하며 부르면 금방 나타나야 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주중, 주말, 휴일 구분 없이 일하고, 비는 시간 없이 근무표가 짜여 있다. 우리 병원은 보통 12시간씩 교대로 일하거나, 36시간 연속 근무 후 12시간 또는 24시간 쉬고 다시 출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첫 근무는 내과에서 시작하였는데, 종양혈액내과 병동에서 주로 근무하는 것으로 배정되었다. 종양혈액내과 병동은 80% 정도가 말기 암 환자로, 전체적으로 상태가 안 좋다. 배나 가슴에 물 빼는 관 한 개씩은 기본이고, 욕창도 많다.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아서 퇴근했다 돌아오면 한 두 명씩 안 계시곤 하였다. 할 일이 기본적으로 많고, 누군가 안 좋아지면 할 일이 더 많아지는 그런 병동이다. 추가로 암 환자와 보호자가 가진 특유의 우울감이 병동 전체에 만연하여, 심신이 꽤 고단한 근무지로 평가된다.
첫날 얘기로 돌아가면, 할 일이 생기면 병동에서 전화로 알려주는데 이상하게 30분 넘게 전화가 안 왔다. 마침 다른 내과 인턴이 도와달라길래 일도 배울 겸 1시간 정도 도와줬는데 여전히 전화가 없었다. 그때 전화기를 보니 첫날부터 오픈콜이 뜨냐는 선배의 연락이 와 있었다. 오픈콜은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오랫동안 전화가 안되면 병동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병원 전체에 방송을 띄우는 것이다. 다른 의사의 오픈콜을 듣는 요즘은 그냥 ‘많이 바쁘신 가 보다’ 정도의 해프닝이지만, 근무 첫날에 그 당사자가 되니 상당히 당황스럽고 큰 잘못처럼 느껴졌다(심지어 오픈콜을 듣지도 못했다). 알고 보니 병원 내 통신망을 사용하는 콜폰을 인턴 모두가 미리 맞추고 3월 1일 개통이 되는데, 모종의 이유로 열댓 명 정도의 콜폰이 먹통이 됐었다. 병동에 다른 직통번호를 알려줌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다.
콜폰 문제를 해결하고, 전화가 안되어 쌓인 일들을 열심히 해결하였다. 그러다 오후에 소변줄을 넣으라는 오더가 내려왔다. 갔더니 병색이 완연한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화장실에 갈 기력이 없어서 소변줄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생 때 교육자가 보는 상황에서 마취된 환자에 넣은 적은 있지만, 여러 보호자가 보는 상황에서 의식이 분명한 환자에게 넣는 것은 처음이었다. 긴장 때문에 머릿속은 하얘져 매뉴얼은 가물가물하고, 노하우는 없고, 주변의 시선은 부담스럽고, 설명해야 할 입은 안 떨어지고, 쌓인 일은 산더미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넣기 시작하는데, 기력이 없던 할아버지의 엄청난 엄살이 시작되었다. 소변줄이 조금 들어가기만 하면 ‘아이고 나 죽네~ 그만! 그만!’ 하며 아랫배에 힘을 꽉 주었다. 소변줄은 아프다고 소리소리 질러도 밀어 넣으면 들어가는데, 괄약근에 힘을 빡 주면 절대 안 들어간다. 너무 아파하시길래 빼고 ‘그만하실까요?’ 물어보면 옆에 보호자들이 ‘아 그래도 함 해봐요~’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하면, 할아버지가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어느덧 시간은 30분 넘게 지나고, 땀이 비 오듯 나고 있었다(소변줄은 원래 5분이면 넣는다). 결국 간호사 한 명이 옆에 와서 열심히 "힘 빼세요! 힘 빼세요!" 해줘서 겨우 성공하고 소변이 콸콸 밀려 나왔다. 첫날 한 일 중에 가장 힘든 일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소변줄을 넣고 나서 한참 돌아다니다 몇 시간 뒤 다른 환자 때문에 그 병실에 들어갔더니 할아버지가 손 내밀면서 너무 고맙다고 덕분에 편해졌다고 아까는 정말 미안했다고 하셨다. 손 잡아드렸더니 한참을 붙잡고 고마워하셨다. 왠지 뭉클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 날 일은 인턴 1년 동안 보람 느낀 일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할아버지는 3일 뒤에 출근했더니 안 계셨다. 병동에서 덤덤한 척하느라 고생 좀 했다.
콜폰 문제 해결 후 오후 7시 퇴근까지 정말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겨우 시간 맞춰서 마무리했는데 다른 인턴들은 아직 일이 꽤 남아있었다. 원래 인턴 3월에는 동기 사랑이 흘러넘친다. 이미 녹초였지만 다 도와주고 8시 좀 넘어서 퇴근했다. 집에 가는 길에 어머니가 엄청 보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왠지 울컥했는데 겨우 꾹 참고 ‘첫날이라 힘들더라, 생각보다 할 만하더라, 이제 퇴근하고 집 가서 쉰다, 밥은 잘 먹었다.’ 얘기하고 얼른 끊었다. 하루 만에 적응이 됐는지 이후로는 그렇게 어머니가 보고 싶을 정도로 힘든 날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