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
‘의대생 신드롬’이라는 재미있는 병이 있다. 의대에서는 아무래도 감기처럼 가벼운 병보다는 심장병, 암 등 죽을 수도 있는 병을 비중 있게 다룬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단순히 기침 한 번, 순간적인 어지러움, 피로감 같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종종 발생하는 증상을 경험했을 때, ‘앗, 나 혹시 죽을병에 걸린 건가?’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이제 막 의학 공부를 시작한 의대생이 얕은 지식으로 인하여 본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을 의대생 신드롬이라 한다.
의대생 신드롬은 좀 더 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하지만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을 할 때에는 의대생 신드롬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큰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보통 한 가지 병만 갖고 있지 않다. 원체 건강이 안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병으로 입원해 있던 중에 새로운 증상이 생기면서 응급 상황이 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래서 간단한 병으로 치료받던 환자라 해도, 새롭게 나타나는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응급 상황이 되기 전, 환자의 몸에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다. 가슴 통증을 호소한다면, 심근 경색이 온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갑자기 혈변을 본다면, 대장이나 소장, 또는 위에서 대량 출혈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혈압이 갑자기 떨어졌다면, 몸속 어딘가에서 출혈이 생겼을 수도 있고, 심각한 탈수 상태일 수도 있다. 안 나던 열이 났다면, 환자 몸속에 세균이 증식하면서 패혈증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가슴 통증은 단순히 위산 역류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혈변은 치질에서 약간 묻어 나온 피일 수도 있다. 혈압은 편안히 오랜 시간 누워있으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열나는 것은 그냥 감기만 걸려도 그럴 수 있다. 이처럼 가벼운 병과 심각한 병을 단순히 증상 한두 개로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환자에게 새로운 증상이 생기면 인턴에게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은 인턴은 무조건 죽을병이라고 생각하고 환자 치료에 임해야 한다. 위산 역류가 명백히 의심되는 가슴 통증이라도 심전도 검사를 해서 심근경색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혈변을 봤다면 환자의 혈변의 양과 횟수를 확인하여 출혈량을 예측하고, 항문 검사를 통해 출혈이 지속되는지 확인하며, 출혈량이 많다고 느껴지면 피검사를 해서 환자에게 빈혈이 생겼는지 봐야 한다. 혈압이 떨어졌다면 뇌로 가는 혈액이 부족해서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우선 수액부터 줘서 혈압을 올려놓은 다음, 원인을 파악하여 다음 처치를 고민해야 한다. 열이 난다면 가장 위험한 세균 감염을 전제로 하여 빠르게 혈액 검사를 진행하고,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
죽을병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검사를 하고 보면, 결과는 대부분 정상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잠깐 그랬다가, 한두 시간 지나면 어느새 괜찮아졌다고 하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인턴은 마치 의대생 신드롬에 걸린 것처럼, 환자가 무조건 죽을병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검사 결과는 레지던트가 판단할 것이고, 백 번에 한 번은 죽을 뻔한 환자를 살리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다. 내과 밤 근무로 저녁 7시에 출근했더니 낮 근무 인턴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한 명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 환자는 다른 약물 치료 때문에 주기적으로 입원하는, 가슴 통증이 생길 이유가 딱히 없는 환자였다. 원인 불명의 가슴 통증을 3시간째 호소하고 있었는데, 앞 인턴이 심전도를 여러 번 찍어봐도 정상이라 심장 문제는 아닌 듯하였고, 위염인가 하여 위장약을 먹였는데도 효과가 없다 하였다. 그래서 진통제를 줬는데도 여전히 많이 아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서 보니 혈압이 약간 높고, 본인은 참을 만하다지만 통증 정도가 심해 보이는 게 ‘대동맥 박리’라는 죽을 수도 있는 병이 뇌리를 스쳤다. 대동맥 박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 몸에서 가장 굵고 긴 혈관인 대동맥이 안에서부터 찢어지는 병이다. 대표 증상은 심한 고혈압, 가슴과 등의 극심한 통증으로, 흔하게 볼 수 있는 병은 아니다. 하지만 대동맥이 찢어진 부위에 따라 응급 수술을 하더라도 사망할 가능성이 있는, 치명도는 상당히 높은 병이다.
다시 환자 얘기로 돌아가면, 책에 나온 증상과 환자의 증상이 명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대동맥 박리가 맞다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슴 엑스선 사진을 찍었더니, 정말로 대동맥 박리에 합당한 사진이 나왔다. 즉시 레지던트에게 보고하였고, 이후에는 사진을 확인한 레지던트가 알아서 처리했다. 환자는 회복까지 한참 걸렸지만, 결국 살아서 퇴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