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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Apr 05. 2020

시시콜콜 인턴 단편선 1

글 한 편으로 만들기는 짧은, 하지만 왠지 생각나면서 안 쓰면 손이 근질근질한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 병실 흡연 검거  

내과 인턴 때 일이다. 백혈병으로 면역이 떨어져서 1인실에 격리된 여고생 환자가 있었다. 드레싱 할 일이 있어서 격리실에 들어갔는데 향수 냄새가 많이 났다. 가까이서 드레싱 하는데 환자는 뭔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고 동시에 담배 냄새가 아주 살짝 섞여 들어왔다(내가 원래 개코로 유명하다). 병원 내에서는 흡연이 금지되어 있으나, 내가 경찰은 아니니 조용히 간호사에게 신고했다. 간호사가 병실에 슬쩍 들어갔다 오더니 맞는 거 같다면서 감탄의 따봉을 날렸다. 간호사가 그냥 봐주자 하기에 알아서 하시라 하고 넘어갔다.


# 체중계

인턴 근무 3개월째였다. 간식을 주문하는데 간식 소모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고민이었다. 인턴장으로서 재정 관리를 위해 간식 소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지독한 현실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체중계를 하나 구매해서 냉장고 앞에 배치하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다. 인턴 동기들이 최근 살이 찐 거 같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직접 재어 보니 다들 체중이 평균 5킬로씩 증가해 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차마 체중계에 올라가지 못했다. 그날부로 갑자기 사람들이 간식을 안 먹기 시작했다. 정책이 성공했나 싶었지만 2주 뒤에 원상 복귀했다. 그래도 만 원짜리 체중계로 2주 치 간식비 100만 원을 아꼈다. 그 뒤로는 그냥 간식이 떨어지든 말든 일정량 시키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장군감

소아과 인턴 때 일이다. 보통 사진을 찍는 영상 검사를 할 때는 환자가 찍는 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갓난아기부터 6살 정도의 소아 환자는 검사가 무섭게 느껴져서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래서 먹는 약이나 주사약으로 ‘진정’시켜서 검사를 진행한다. 보통 갓난아이는 약을 먹고 10분이면 깊은 잠에 빠지는데,  아는 달랐다. 


생후 6개월의 남자아이였는데, 약을 먹고 20분이 지나도록 말똥말똥했다. 추가로 주사약을 한 번 맞고도 졸린 기색이 없어서, 주사약을 한 번 더 줬더니 그제야 잠이 오는 듯했다. 보통은 거기서 사르르 눈을 감기 마련인데, 그 아이는 무슨 원통함이 있었는지, 여기서 절대 쓰러질 수 없다는 장군의 몸짓을 취하기 시작했다. 아기 목소리로 귀엽게 울부짖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침대를 마구 두들겼다. 간신히 잠들더니 검사가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알고 눈을 부릅뜨는 걸 보고 앞으로 크게 될 녀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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