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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Apr 13. 2020

외과 중환자실에서 한 달

대한민국 외과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 들어오는 레지던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외과는 내과와 함께 의료의 2대 핵심축인데, 여러모로 전망이 어두워서 나라에서 월급을 200만 원씩 더 줘도 하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외과 인턴은 레지던트가 하는 일들을 하게 된다. 중환자실같이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장소는 경험이 부족한 인턴에게 맡기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일한 병원의 외과는 그 해에 인원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인턴에게 중환자실 담당 레지던트의 역할을 맡겼다. 6월에는 그 역할을 내가 하는 것으로 배정이 되었다.


중환자실 파트는 젊은 교수님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환자실 파트 역시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급조된 파트로, 외과의 유망한 젊은 교수들을 차출하여 가장 힘든 중환자실을 담당하도록 새로운 팀을 만든 것이었다. 보통 대학병원 교수쯤 되면 밤새 당직서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중환자실 교수님들은 돌아가면서 4일에 한 번씩 밤을 새우는 게 일상이었다. 교수님들은 힘들게 일하셨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힘든 일을 시키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할 수 없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시키셨으며, 더 어려운 일을 시키기 전에는 반드시 충분한 교육을 진행하였다. 


인턴 일이라는 것이 명목상으로는 교육을 받는다고 되어있지만, 사실 대부분 일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때의 외과 근무에서는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외과와 완전히 다른 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배운 외과 지식들은 많이 잊힌 상태고, 중환자실에서 나를 고생시킨 몇몇 환자들이 더 기억이 난다. 간단히 2명을 소개해본다.


#1.
간이 안 좋아서 입원한 40대 아줌마 환자가 있었다. 간이 심각하게 안 좋으면 온 피부에 더해 눈 흰자까지 누렇게 변하고, 온몸에 물이 차면서 붓는다. 정신도 혼미해져서 헛소리도 많이 한다. 이 환자가 딱 그랬다. 중환자실에 처음 왔을 때부터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약과 기계를 엄청나게 달아 놓고 겨우겨우 현상 유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가 정신이 들었는데 앞에 간호사를 보고 처음 한 말이 ‘참이슬 가져와’였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하여 간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환자였던 것이다.  


한 번 정신 차린 뒤로는 계속 정신이 멀쩡해서 앞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소리 지르고, 술 가져오라, 집에 보내줘라 난리였다. 그나마 나이가 젊어서 안 좋은 간으로도 버티고 있었지만, 간은 쉽게 회복이 되는 장기가 아니라서 조금씩 안 좋아지다 결국 사망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환자가 간 이식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뇌사자의 간을 받게 되었고 환자의 생명이 위험한 만큼 빠르게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 환자가 간 이식을 받는다는 소식에 나와 교수님들은 같이 탄식했다. 간을 이식받고 집에 가게 되면, 다시 폭음하면서 소중한 간을 망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간 이식을 받은 환자는 급속도로 회복하여 수술 후 한 달도 되기 전에 퇴원하였고, 예상대로 몇 개월이 지난 뒤 이전의 심한 황달 모습 그대로 응급실에 돌아왔다.


 #2.
어느 날 출근했더니 간호사가 4시간에 한 번씩 드레싱을 해줘야 하는 환자가 왔다고 하였다. 가서 보니 할아버지 환자 한 분이 기관 삽관이 된 채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드레싱 부위를 보니 항문 주변이 넓게 도려내져 있고 변이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상처에 당황스러워서 의무기록을 봤더니 고환에 생기는 희귀 종양이 빠르게 자라면서 고환과 항문을 집어삼킨 케이스였다. 엄청난 복통에 응급실로 왔고, 비뇨기과와 함께 응급 수술을 진행하여 고환과 항문 주변을 넓게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것이었다. 안에 갇혀 있던 변이 얼마나 많았는지 수술이 끝난 지 8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상처에 더러운 변이 있으면 상처가 아물지 않고 덧나기 쉽다. 나오는 변을 싹 닦아내고 소독약을 한통 다 부어서 상처를 깨끗이 닦아내는 식으로 4시간에 한 번씩 드레싱을 했다. 며칠간 열심히 드레싱을 했더니 변도 안 나오고 상처도 많이 좋아져서 봉합수술을 하고, 장루를 만들어서 배에 낸 구멍으로 변이 나오게 하고는 중환자실을 떠나 일반 병실로 갔다. 이후 헤어진 환자를 몇 달 뒤 내과 근무에서 만났는데, 항암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계셨다. 이전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이라서 열심히 변을 닦아낸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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