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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Mar 27. 2020

죽게 놔둬야 하는 환자

연명의료결정법

DNR이라는 제도가 있다. ‘Do Not Resuscitate’의 약자로, 한국어로는 ‘심폐소생술 거부’라고 한다. 미국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내용인데, 꼭 주인공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말기 암으로 투병하다가 죽음이 임박하면, 주인공은 DNR임을 알면서도 의료진을 부르고 제발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도착한 의료진은 자료를 확인하고는 DNR 환자에게는 그럴 수 없다 하며 ‘let him(her) go’라고 담담히 말하곤 한다. DNR은 한국에서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뒤로 점점 빈도가 높아지는 추세이며, 대학 병원에서는 이미 절차가 잘 준비되어 있다.


DNR에 대하여 조금 더 설명하자면, 말기 암 등으로 인하여 기대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앞으로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하지 않도록 의료진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환자가 병으로 인하여 의사 표현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가족 여러 명의 동의를 받아서 DNR 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의료진이 환자의 기대 여명에 대한 판단을 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환자의 현 상태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한 뒤, DNR을 권유하게 된다. 의료진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며, DNR의 선택은 오롯이 환자와 보호자의 몫이다.


환자에게 있어 DNR 선언은 나에게 다가온 죽음을 받아들이고, 주변인들과 함께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다. DNR을 선언한 환자는 오히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그라들며, 평온한 마음으로 임종하는 경우가 많다.


보호자 입장에서도 DNR의 의미는 비슷하다. 그들에게 찾아온 비극을 받아들이고, 살면서 서로에게 쌓였던 앙금이 있었다면 해소하며, 마지막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DNR을 가족을 포기하는 행위로 느껴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본인의 선택이 정말 환자를 위해서인지, 돈이나 간병에 지친 마음 때문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의료진에게 DNR은 의료의 효율성 측면에서 좋은 제도이다. 말기 암 환자에게 심정지가 온 경우, 심정지의 원인은 넓게 퍼진 암이지 심장이 아니다. 겨우 심장을 되살려 놓아도 암은 여전히 남아 있다. 100% 수 시간 내로 다시 심정지가 온다. 심폐소생술 상황에 투입되는 시간, 의료 인력 및 자원은 막대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생술을 줄이는 DNR은 의료진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DNR은 환자, 보호자, 의료진 각각에게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 의미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퇴색되고 변질될 때가 많다. 그럴수록 더더욱, DNR의 본질은 다른 누구도 아닌 환자를 위한 제도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턴을 하면서 지켜본 DNR 제도의 두 가지 어두운 면이 있다. 첫 번째는 환자와 보호자가 느끼는 소외감이다. DNR은 보통 환자가 많이 위중한 상황에서 동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위중하면 당연히 해줘야 할 처치가 많다. 하지만 DNR이 진행된 환자에게는 적극적인 처치를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오해가 생긴다. DNR 하기 전에는 자주 와서 봐주고 하는 것도 많았는데, 하고 나니 피검사 한 번 안 해보고 의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다. 외면당한다는 느낌, 죽게 놔둔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두 번째 어두운 면은 DNR을 강요하는 의사가 생긴다는 것이다. 아무리 의사가 잘 설명을 해줘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버리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면 DNR이 늦어지게 되고, 환자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길면 하루 이틀, 짧으면 당장이라도 심장이 멈출 거 같은 상태가 된다. 끝내 심장이 멈추고 심폐소생술이 터지면 담당 레지던트 및 인턴은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진다. 반대로, DNR로 사망하면 일이 상당히 적어진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의도적으로 DNR을 권유가 아닌 강요하는 레지던트를 꽤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욕할 자격이 없다. 나 역시 안 좋은 환자를 만나면 레지던트가 어서 DNR을 받아 주길 간절히 기도하는 평범한 인턴이었다.


가끔 철없는 젊은이들이 심폐소생술 과정을 보고 저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지 않다며 DNR 사전 동의서를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있다. 내일 당장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가도 곱게 생을 마감할 것인지 한 번만 생각해보고 결정하기 바란다. DNR은 생명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제도로, 이 제도가 정립되기까지 현대 의료는 꽤 많은 성장통을 겪었다. 의사가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두는 제도라는 오해,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 등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DNR 선언은 큰 병에 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뒤에야 비로소 자격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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