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는 주기적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99% 확률로 항암 화학 치료 중인 암환자다.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는 보통 일정 주기로 항암제를 맞게 되는데, 항암제란 녀석이 여간 독한 게 아니라서 입원해서 의사의 관찰 하에 항암제를 맞는다. 팔에 주사를 놓고 항암제를 맞으면 혈관이 망가져 버리기 때문에, 케모포트(chemoport)라는 동전 크기의 금속을 가슴 피부 아래에 삽입하고, 그 금속에 주사를 꽂아서 항암제를 맞게 된다. 여기서 케모포트에 주사를 꽂는 것이 바로 인턴의 역할이다.
그러다 보면 가끔 오랜만에 만나는 환자가 생긴다. 인턴은 몇 개월 간격을 두고 이전에 돌았던 과를 다시 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환자의 항암 치료 주기와 우연히 맞으면 몇 달 만에 같은 환자의 케모포트에 다시 주사를 꽂게 된다. 추측으로는 서로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다. 케모포트 꽂는 데 1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기억에 남기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이벤트가 있으면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2명의 환자가 기억이 난다.
첫 번째 환자는 4월 소아과와 이듬해 1월 소아과에서 만났다. 다시 만났을 때 나만 이 환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첫 만남은 4월 소아과 밤 당직 때였는데, 응급실을 거쳐서 여중생 한 명이 입원했다. 열이 안 떨어져서 검사를 했더니, 백혈병으로 나와서 즉시 입원한 것이었다. 수혈 동의서를 받으러 병실을 방문했더니 환자의 어머니가 말 그대로 펑펑 울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해"라고 계속 되뇌면서 울다가 내가 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하자 겨우 진정하고 동의서를 작성하였다. 반대로 환자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냥 "졸려, 배고파, 학교 이제 못 가는 거야?" 하는, 조금 아프지만 평범한 중학생일 뿐이었다.
이듬해 1월 소아과에서 다시 만난 환자와 보호자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눈에 띄는 변화로는, 환자가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면 보통 그냥 밀어버리는데, 다시 자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더해, 환자는 엄살쟁이가 되어 있었다. 의사나 간호사가 근처에 가기만 하면 반사적으로 "아픈 거예요?"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주사에 찔릴 때는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서 "아파요, 아파요" 하면서 눈물을 조용히 흘렸다. 얼마나 주사를 찔렸으면 그렇게 됐을지,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반대로 어머니는 여전사가 되어 있었다. 동의서를 받으러 가면 "주세요" 그러면서 설명을 듣지도 않고 사인을 해버리고(수십 번은 작성해봤을 동의서다), 대부분의 시간은 조용히 환자 옆에 앉아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환자가 "아픈 거예요?" 물어보면 책에서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안 아파. 다 했던 거잖아"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변한 모습에 역시나 가슴이 아팠다. 사실 이 보호자 외에도 백혈병 환자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여전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환자는 8월 내과와 12월 내과에서 만났다. 이 환자의 경우는 환자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첫 만남은 8월에 다른 인턴의 도움 요청을 받고 간 병실에서였다. 케모포트에 주사를 꽂아야 하는 아주머니 환자였는데, 사실 케모포트에는 다양한 모델이 있다. 동전 크기 정도가 일반적이지만, 가끔 손톱만 한 케모포트를 가진 환자가 있다. 이 환자가 그런 환자였다. 손톱 케모포트는 작고 가볍기 때문에 주사 꽂을 때 바늘에 이리저리 잘 튕겨 나가서 난도가 높다.
앞 인턴이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계속 실패를 했던 거 같은데,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갔더니 환자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케모포트 주변에 주삿바늘 자국이 여러 개 보이고, 넓은 범위가 뻘겋게 부어 있었다. 그리고 점점 퍼렇게 멍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겨우 케모포트에 주사 꽂으면서 생기기에는 상당히 심한 부작용이었다. 나는 상황을 보자마자 바로 앞 인턴 욕을 시작했다. "누가 이랬어요!"
즉시 반응이 나왔다. "어리바리하게 생긴 남자 선생님이 그랬다. 그 선생님은 한 번도 이런 거 안 해본 사람 같다. 죄송하다고 하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너무 아프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다" 등등…. 신나게 같이 욕하면서 맞장구 쳐줬다. "그 선생님이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제가 가서 따끔하게 혼내겠다. 제가 한 번에 잘해드릴 테니 기분 풀어라" 다행히 나는 암 병동에서 오래 일해서 손톱 케모포트에도 익숙했다. 단번에 성공하고 환자의 극찬을 받았다.
12월에 다시 내과를 도는데 케모포트 꽂으러 병실에 들어갔더니 낯익은 아주머니 환자 한 분이 엄청 반가워했다. 기억이 잘 안 나서 "아하하" 웃으면서 기억을 더듬는데 환자가 힌트를 줬다. "그때 어떤 선생님이 나 여기 많이 아프게 했는데 선생님이 잘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그제야 생각이 나서 "아~" 하면서 케모포트 쪽을 보니 붓기도 없고 멍도 다 빠져 있었다. 또다시 한 번에 잘 꽂아드리고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