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무기력, 그리고 고민.
가끔 내 우울은 불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작년 여름을 분기점으로 나는 많이 변화했고 나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아있는 게 있다. 바로 무기력이다. 때때로 무기력이 찾아와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일상생활을 잘 수행하는 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적어도 나보다는 일상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세상을 살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고, 무기력해도 이겨내고 억지로라도 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삼시세끼 챙겨 먹는 거, 과제하는 거, 샤워하는 거 이 모든 걸 나는 미루고 미루다 한다. 특히 샤워하는 거 요즘 비대면 수업이라 최대한 미루고 있다. 심지어 밖에 나갈 때도 웬만하면 안 씻고 모자 눌러쓰고 나간다. 누군가 이 글을 보면 안 찝찝하냐고 할 수 있다. 근데 귀찮은 게 찝찝함을 넘어선다. 씻겨주고 머리 말려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기계가 발명되면 정말 가산을 탕진하더라도 구매하는 걸 심각하게 고려해볼 것 같다.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가끔 내가 한심하니까. 그래도 너무 자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원장님(정신과 전문의)이 자책은 우울증에 독이라고 하셨으니까. 조금만 꾸준히 치료받으면 완치(?) 판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거 같다. 하긴 그렇게 벗어나는 게 쉬웠으면 10년이 훌쩍 넘게 앓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정말 평온한 상태다. 다만 지금 이 상태로는 ‘사회에 나가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미루는 것도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사회는 실전 아닌가. 미루는 것 따위 용납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도태될 것이다. 때때로 무기력이 찾아온다는 핑계로 내일을 남한테 떠넘길 수 없다.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자꾸만 그런 세계에 내가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떤 일을 하나 꾸준히 하는 걸 못한다. 단기간 동안 하는 일은 에너지를 모아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졸업하고 나서 회사를(취업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긴 하지만) 최소 1년 이상 다닐 생각을 하니 숨 막힌다. 어떻게 매일 일을 나가지? 매일 쳇바퀴처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그렇다고 다이내믹한 일상을 살고 싶은 건 아니다.) 이런 생각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두려움이 앞선다. 낙오자가 되긴 싫은데 낙오자가 될 것만 같다. 그럼 난 뭘 해야 되지? 내 입맛에 딱 맞는 건 없을 텐데. 한숨만 나온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긴 한다. 그런데 그에 뒷받침되는 재능도 없고 노력도 부족한 것 같다. 지금까지 글은 조금 써봤어도 대본 한 편 완성한 게 없다. 그냥 몇 번 구상해본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이게 나의 현주소다. 김은희 작가는 약 70보만 걷고 앉아서 글만 쓴다는데, 그런 대작가도 아닌 나는 이러고 있다. 내가 우울증을 앓지 않았으면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우울증과 상관없이 그냥 원래 이런 인간인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아이유는 스물셋에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한 거 같던데, 나는 20대 후반에 이런 고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숨만 나온다. 얼마나 걸어가야 삶에 확신이 생길까. 정말 모르겠다.
그냥 이런저런 고민들을 어디 딱히 풀 때도 없어서 여기에 끼적여 보았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이 있다면 도움은 못 돼도 공감은 될 수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또 무기력과 분투하며 일상을 살아 보려 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부디 살아 있으시길 바란다.
※ 오랫동안 글을 발행하지 않았음에도 9명의 구독자 분들께서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돌아올 수 있는 힘이 됐습니다. 저는 또 간간히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