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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Feb 06. 2021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가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작년 여름, 당시 나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카페 직원 A였다. 평범하게 동료들과 웃고 떠들었으며 고객이 오면 친절하게 응대했다. 그리고 집에 가면 커터칼로 손목을 그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지 않던 자해가 시작됐다. 자아가 처참히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자해를 하면서 언젠가는 용기를 내서 저 깊숙이 있는 동맥을 꼭 찌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손목을 헤집고 나서 출근할 때는 손목 보호대를 착용했다. 동료들한테는 가구를 옮기다가 좀 다쳤다고 거짓말을 했다. 손목의 상처가 좀 옅어지면 파운데이션을 덧칠해서 가리고 다니곤 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강하게 드는 날에는 아파트 꼭대기 층 난간에 올라서기도 했다. 처음에는 온몸이 떨리도록 아래를 쳐다보는 게 무서웠는데, 계속 올라가다 보니 조금씩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죽음을 매일 준비했다.


 하루는 퇴근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너무 더웠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너무 더워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집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에 뛰어들면 몸이 가벼워질 것만 같았다. 차도에 뛰어들려는 순간 얼마 전에 우편함에서 본 정신건강복지센터 책자가 생각이 났다. 책자에는 ‘당신은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할 권리가 있다.’라고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이미 오랜 상담 경험이 있었고 그런 곳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순간 생각이 났을까. 몇 번의 고민 끝에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호흡곤란이 오는 것 같았다. 직원이 전화를 받았을 때는 끊어버리고 싶었다. 짧은 침묵 끝에 “죽고 싶어서요.”라고 힘겹게 내뱉었다. 그러자 직원은 지금 바로 올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했고 바로 센터로 향했다. 가서도 입을 여는 게 쉽지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다만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상담사의 여러 질문 끝에 아동학대와 학교폭력을 당한 과거를 털어놨다. 그게 오랜 시간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기억 때문에 아직도 내가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힘들다고 했다.(매우 비합리적인 생각이지만 깊은 마음의 병은 합리적인 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나중에는 부르르 떨면서 눈물까지 쏟아냈다. 눈물 따위 메마른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믿을 수 없이 눈물이 많이 나왔다. 어쩌면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상담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었다. 여전히 죽고 싶다는 마음을 놓지 못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이후 치료를 받자는 상담사의 오랜 설득이 있었다. 그 정성에 감동해서인지 진짜 살고 싶었는지 나는 근방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기로 결정했다. 센터에서 추천한 그곳은 가깝기도 했지만 내원했던 환자들 평도 좋은 곳이라고 했다. 사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전에 몇 번 가봤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갔을 때마다 직설적이고 이성적인 의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환자들에게 평이 좋은 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사와 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역시 의사는 직설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죽고 싶은 내 마음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약사 같았다. 약만 처방해주고 제대로 상담은 해주지 않는 의사 같았다.(나중에는 그게 선입견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자꾸 죽고 싶다고 하면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이 더 그렇게 느껴지게 했다.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다. 하지만 당시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거절하고 통원치료를 받기로 했다. 죽고 싶었으면서 카페 걱정은 됐었나 보다. 당장 인력이 부족한 카페 걱정에 퇴사하고 치료받기를 택하지 않았다.


  상담사와는 이후 전화 상담을 주기적으로 하기로 약속했다. 센터 측은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애썼다.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치료비 지원이었다. 1년 동안 총 40만 원.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에 3개월 이상 근무한 덕택에 의료비 지원이 더 용이했다. 사실 진료비가 그렇게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회당 많아야 만 원 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 예방 지원 서류를 작성하고 지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관심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다. 나에게는 그 느낌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대로 내팽개쳐지고 싶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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