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사건사고 1-1
임진왜란이 끝난 뒤 쓰시마 번(일종의 행정구역)에서 조선과 일본 몰래 엄청난 수작을 부렸대! 자칫하면 쓰시마 다이묘(번의 최고 실권자)가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처지였어. 그런데도 쓰시마는 왜 그토록 위험한 일을 남몰래 꾸미고 있었을까?
“다이묘님! 이대로 가다간 우리 쓰시마는 아예 끝장입니다, 끝장! 어떻게든 조선과 일본 사이에 다시 국교가 열려야 돈벌이도 되고, 조선으로부터 식량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한데……. 임진왜란 때 우리가 앞장서서 조선으로 쳐들어가는 길을 안내했는데 지금 조선에 손을 내민다니 그게 될 말이오?”
“그래서 말인데요, 좋은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가 앞장서서 조선으로 가는 겁니다. 가서는 우리 쓰시마는 본래 힘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일본의 최고 실권자인 쇼군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며, 우리는 진실로 조선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매달리는 겁니다. 만약, 우리 뜻을 안 받아들이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은근히 몰아치기도 하고요!”
“그런데 암만 우리가 애걸복걸 매달린다 해도 조선이 쉽게 받아줄 리 없을 텐데……. 만약, 조선에서 어떤 조건을 내걸면 어떻게 하겠소?”
“그건 염려 마십시오. 우리가 중재하면 틀림없이 조선에서는 반응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조선 임금이 우리 쇼군에게 국서를 보낼 테니 그걸 우리가 먼저 보고, 살짝 고쳐서 쇼군에게 보내는 겁니다. 또, 쇼군이 조선 임금에게 보내는 국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먼저 본 다음 살짝 고쳐서 조선에 보내는 거죠. 그럼 감쪽같을 겁니다!”
어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겠지? 맞아! 정말로 엄청난 일을 쓰시마에서 꾸미고 있는 거야. 조선 임금이 보낸 국서와 일본 쇼군이 보낸 국서를 자기네 마음대로 뜯어고치려는 거지. 이러다 딱 걸리는 날이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판인데 말이야, 실제로 그렇게 했대!
왜 그랬을까?
임진왜란이 끝나자 쓰시마는 일본에서 가장 먹고살기 힘든 곳이 되었어. 왜냐고? 쓰시마는 예로부터 조선과 일본 사이의 중계무역으로 큰돈을 벌었거든. 또, 조선으로부터 곡식을 하사받아 부족한 식량을 채웠고. 그런데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짓밟는 데 쓰시마가 앞장섰잖아. 그러니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서 쓰시마를 곱게 볼 리가 없지. 중계무역도 끊기고, 식량도 끊겼으니 쓰시마로선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 또, 일본 본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가 죽은 뒤 쇼군 자리를 둘러싸고 전투에 휩싸였거든. 그러니 쓰시마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사정이 이러니 쓰시마의 형편이 어땠을까? 빤하지? 결국, 쓰시마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선 거야. 그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조선과 일본이 다시 국교를 맺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거지. 필요하다면 두 나라 사이에 끼어 국서까지 제멋대로 고치려고 맘먹은 거야!
한편, 쓰시마의 요청에 대하여 조선은 어떻게 했을까? 사실 조선도 일본 사정이 무척 궁금했어. 일본이 다시 쳐들어올지 어떨지도 모르겠고, 임진왜란 때 붙잡혀 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으니 마냥 쓰시마의 요청을 물리칠 수만은 없었지. 고심 끝에 조선에서는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을 일본에 탐적사로 보내기로 했어. 그러자 쓰시마는 잽싸게 끌고 간 조선인을 일부 돌려보내고, 다른 지역에도 연락해 붙잡아온 조선인을 돌려보내라고 발 빠르게 움직였지. 어떻게든 조선에 잘 보여야 국교가 다시 열릴 테니까! 이런 쓰시마의 간계와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를 만난 사명대사가 이에야스는 조선과 아무런 원한이 없다고 말했다는 보고에 따라 조선은 쓰시마에 답을 줬지. 그때가 임진왜란이 끝난 지 딱 십 년이 되던 1606년이었어. 대신에 조건을 내걸고,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다시 일본과 국교를 틀 수 있다고 전했지.
그럼 조선은 어떤 조건을 내걸었을까? 크게 두 가지래.
“첫째, 쇼군 이에야스가 먼저 조선에 국서를 보내야 한다! 둘째, 임진왜란 때 조선 임금의 무덤을 파헤친 범인을 붙잡아 보내야 한다!”
이런 조건은 쓰시마 입장에선 참 골치 아픈 문제였어. 왜 그럴까?
“다이묘님! 조선이 요구한 조건을 바쿠후(오늘날의 정부)가 받아들인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니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조선에 국서를 먼저 보내야 한다는 말은 다시 말해 이에야스 쇼군이 임진왜란에 대하여 사과해야 한다는 뜻이잖습니까? 그런데 조선과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고 하는 이에야스 쇼군이 무엇 때문에 사과하겠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골치가 아프다는 말이요. 뭐, 뾰족한 수가 없겠소?”
“그래서 말인데요,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이 있다? 무슨 수가 있단 말이오?”
“자칫하면 목을 내놓아야 할지 모르므로……. 보안을 철저히 하면 될 수도 있습니다만……. 과감히 그리고 몰래 국서를 고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뭣이라? 국서를 고친다고?”
쓰시마는 조선의 첫째 조건인 ‘일본이 먼저 국서를 보낸다.’는 말을 차마 바쿠후에 전할 수 없었어. 그러니 쇼군이 먼저 국서를 보내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거짓으로 자기네가 국서를 만들어 조선 임금에게 보낸 거야. 그러자 조선으로서는 첫째 조건을 일본이 받아들인 것이니 큰 문제 하나가 풀린 셈이야! 이렇게 해서 쓰시마는 그 뒤로도 조선 임금과 일본 쇼군 사이에 오간 국서를 죄다 고쳤거든. 이를 ‘국서개작사건’ 또는 ‘국서조작사건’이라고 해. 이제 쓰시마의 수작이 어떤 건지 눈에 선하지?
그렇다면 조선의 두 번째 조건을 쓰시마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둘째, 조선이 ‘왕릉을 파헤친 범인을 보내라.’는 조건은 조선을 엉망진창으로 망친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 또한 쇼군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지요. 그러나! 국서도 바꾸는 마당에 그보다 쉬운 일을 왜 처리하지 못하겠습니까? 우리 쓰시마의 감옥에 있는 죄인 가운데 두 놈을 조선으로 보내 그놈들이 조선 왕릉을 파헤친 범인이라고 우기면 됩니다!”
그래서 쓰시마에서는 왕릉을 파헤친 범인으로 엉뚱하게도 쓰시마의 죄인을 보냈어. 그러니 진실이야 어찌 됐건 조선이 내건 조건을 둘 다 들어준 셈이 됐잖아.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전하! 나라 사이에 오가는 국서, 그것도 먼저 사과를 하는 국서가 이렇게 몇 달 만에 왔다는 것은 의심쩍기 그지없습니다! 몇 년이 걸려 고민해도 그 답이 쉽지 않을 터인데, 이처럼 빨리 국서가 왔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전하! 다르게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인 피로인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쓰시마가 붙들어간 사람을 되돌려 보내는 것도 그렇고, 사명대사의 보고를 들어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사정을 살펴볼 때 일본 또한 전쟁 피해를 줄이기 위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오랑캐 섬나라도 전쟁 뒤 편할 까닭이 뭐 있겠습니까? 행여 우리와 명나라 연합군이 쳐들어갈까 봐 걱정도 될 겁니다. 그러니 굳이 우리가 의심할 까닭이 없습니다.”
“전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왕릉을 파헤친 범인으로 새파랗게 젊은 죄인 두 사람을 보낸 것은 감히 오랑캐가 우리 조선을 우롱하는 짓거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임진왜란 때 고작 십여 세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전하! 젊은 죄인 둘을 보낸 것은 당연히 의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정이야 어쨌건 국서도 먼저 보내왔고, 왕릉을 파헤친 죄를 물어 그 죄인도 보내왔으니 우리의 요구조건은 모두 받아들여진 셈 아닙니까? 게다가 지금은 북쪽 여진족의 움직임도 심상찮으니 남쪽을 미리 안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의 속셈도 알아볼 겸, 우리 피로인도 되돌려 받을 겸 쇼군이 보낸 국서에 대하여 회답 국서를 보냄이 마땅한 줄 압니다!”
“알겠소. 짐이 쇼군에게 답장을 보내 끌려간 사람을 하루속히 돌려보내라고 요구하겠소. 그러면 일본으로 보낼 사신의 명칭은 어떻게 정하는 게 좋겠소?”
“전하! 일본 쇼군의 국서에 대한 답장을 보내는 것이니 ‘회답’이라 하고, 피로인을 돌려받아야 하니 ‘쇄환’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곧, ‘회답 겸 쇄환사’라 함이 옳겠습니다!”
조선은 이런 결정을 내린 뒤 ‘회답 겸 쇄환사’를 국서랑 함께 쓰시마로 보냈어. 물론, 쓰시마는 그 국서에도 손을 댔지!
“다이묘님! 조선이 보낸 국서에 ‘봉복’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봉복’이라는 말은 ‘쇼군이 보낸 국서에 대한 답장’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쇼군은 국서를 보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걸 보내면 우리가 마음대로 국서를 보냈다는 게 들통날 것이고, 경을 칠 게 빤합니다! 그러니 ‘봉복’이란 말 대신에 ‘봉서’라고 고치는 겁니다. 그러면 조선 임금이 처음으로 일본 쇼군에게 글을 올린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조선의 국서를 맘대로 고쳐 일본 쇼군에게 전한 쓰시마는 마찬가지로 쇼군이 보낸 국서도 살짝 고쳐서 조선으로 보냈지. 이르자면 쇼군의 답장에는 ‘일본국 미나모토노 히데타다’라고 적혀있었는데, 이를 ‘일본 국왕 미나모토노 히데타다’로 고쳐 조선으로 보냈어. 심지어 국새까지도 몰래 만들어 찍었고 말이야. 이렇게 조선과 일본의 조정 몰래 국서를 고쳐 쓰는 짓거리는 2차 회답 겸 쇄환사, 3차 회답 겸 쇄환사 때도 마찬가지였어. 대담하지? 그렇다면 쓰시마의 이런 수작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졌을까?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잖아!
“쇼군 전하! 쓰시마 다이묘가 조선 임금이 보낸 국서와 쇼군이 보낸 국서를 제멋대로 고쳤다 합니다! 이는 쓰시마가 전하의 권위를 깎아내림은 물론이고, 반란을 꾀한 것인지도 모르니 당장 다이묘를 직접 불러 심문하되, 그 죄가 드러나면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봐, 큰일 났지? 어쩐다? 쓰시마가 이 절대, 절명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이제 쓰시마에서 온 답을 들어볼 차례야.
“쇼군 전하! 저희가 국서를 고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일찍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쇼군은 조선과 친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찌 대일본의 쇼군이 조선 임금에게 먼저 국서를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 쓰시마 번에서 대신 국서를 만들어 보낸 것입니다. 쇼군의 이름 앞에 일본 국왕이라고 한 것은 그래야 조선 임금과 대등한 관계가 되겠기에 그리 한 것입니다!”
그러자 일본 바쿠후에서는 무엄하고 방자한 쓰시마 다이묘가 스스로 그 죄를 시인했으니 목을 베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나왔어. 하지만, 비록 쓰시마의 죄는 괘씸하나 조선이 쓰시마를 통해 일본과 외교 문제를 통하는 만큼 쓰시마의 공로를 인정함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거든. 그 후 바쿠후는 당장 조선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므로 쓰시마를 용서하되, 앞으로는 바쿠후에서 쓰시마로 관리를 파견해 국서를 함부로 고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 거야. 조선과 일본 본토 사이의 작은 섬 쓰시마는 그렇게 죽다 살아난 거지.
1633년, 쓰시마 번에서 국서를 몰래 고친 사실이 발각되었지만, 도쿠가와 바쿠후는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쓰시마 다이묘는 너그럽게 봐 주고, 아무런 책임도 없는 애꿎은 사람의 목만 베었대.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이에야스가 국서를 마음대로 바꾼 사실을 알면서도 조선과 국교를 다시 맺으려고 일부러 모른 척했다는 주장도 있어. 아무튼, 그 말이 옳고, 그른지는 더 연구해 봐야 할 거야.
그럼 일본은 그렇다 치고, 국서개작사건을 전해 들은 조선의 입장은 어땠을까?
“전하! 섬나라 오랑캐가 우리가 보낸 국서와 자기 나라 쇼군이 보낸 국서까지 맘대로 고쳤다 합니다. 이는 오랑캐가 감히 우리를 놀리는 것이니 엄하게 다스림이 옳을 줄 압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비록 쓰시마에서 그런 몹쓸 짓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일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요, 오랑캐끼리의 문제이므로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자칫하면 국서개작사건으로 두 나라 사이의 외교 관계가 더욱 오랫동안 끊어질 판이었어. 하지만 조선과 일본 두 나라 모두 양국의 평화를 원했거든. 그 때문에 쓰시마가 저지른 국서개작사건을 더는 문제 삼지 않은 거야. 건드려봐야 두 나라 모두 시끄럽기만 하잖아. 그렇게 쓰시마는 대역죄를 범했음에도 큰 문책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았어. 재미난 것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전쟁을 치러 철천지원수가 된 조선과 일본이 오래지 않아 저마다 제 나라에 유리한 명분을 앞세우며 선린외교를 유지하려 했다는 점이야. ‘역사의 아이러니’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맞지?
생각 거리)
세계외교사를 살펴보면 쓰시마의 ‘국서개작사건’처럼 상식이나 예의에 어긋나더라도 서로 국익에 부합한다고 하면 기꺼이 탁자를 마주하고 대화와 협상을 하는 장면이 종종 나와요. 이처럼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설령 상식이나 예의에 어긋나더라도 눈 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