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사건사고 1-3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은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겼어. 왜냐고? 북쪽에 자리한 여진족의 움직임이 심상찮았거든. 그게 왜 고민이냐고? 예로부터 이웃에 강한 나라나 민족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어. 그러니 보통 문제가 아니지. 일본의 힘이 세지면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중국의 힘이 세지면 중국의 침략을 받았잖아? 그런데 이번엔 여진족이 점점 만주에서 힘을 키워가고 있어.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렇지! 언제 여진족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거야! 그래서 조선으로서는 여진족에 대한 대책을 마땅히 세워야 했어.
“장군! 아직 우리는 여진족의 기마병을 물리칠 방도가 없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겠소?”
“대감! 여진족 기마병의 공격을 물리치려면 마을을 버리고 산성으로 옮겨 싸우면 됩니다!”
“아니 산성에 간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산에서는 말이 힘을 쓰지 못하는 데다, 뛰어난 활이 우리한테 있으니 능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위력을 보인 일본의 조총을 가져와 싸우면 물리칠 수 있습니다!”
조총은 1543년 포르투갈 사람이 일본 규슈 남쪽 다네가시마에 와서 화승총 두 자루를 전한 데서 비롯된 거야. 때마침 일본은 그때 여러 다이묘가 서로 죽기 살기로 다투고 있던 전국시대였어. 그래서 다이묘들은 손재주가 괜찮은 대장장이를 시켜 화승총을 본떠 만들도록 했는데, 이 화승총이 ‘다네가시마총’이라는 이름으로 사카이(오사카 옆에 있는 무역항) 상인을 통해 일본 곳곳으로 퍼지게 돼. 이 조총의 덕을 가장 크게 본 일본 다이묘가 있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오다 노부나가(1534~1582)’야!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부대를 만들어 기마병 전술을 주로 쓰는 다이묘를 무릎 꿇렸어. 그러니 일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기마병을 무찌를 수 있는 부대를 양성해온 셈이지. 이렇게 조총을 바탕 삼은 전술로 무장한 오다 노부나가는 마침내 일본을 통일하는 기틀을 다지게 돼.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군은 명장이라고 일컬어지던 신립(1546~1592) 장군을 비롯해 여러 장수가 왜군의 조총 앞에 맥없이 무너졌어. 그런 터라 조선에서는 여진족의 기마병이 제 아무리 강하더라도 일본 조총으로 맞서면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거지. 사실 여진족은 임진왜란 때도 큰 위협이었거든. 오죽했으면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에도 여진족이 사는 마을에 첩자를 보내 그 움직임을 샅샅이 살펴보고 왔겠어? 아무튼, 상황이 이러니 1607년 ‘회답 겸 쇄환사’로 일본에 간 사절단은 일본의 사정을 살펴보고 피로인을 데려옴은 물론 새로운 임무를 하나 더 떠맡게 된 거야.
“정사!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에 가서 조총을 많이 사 와야 할 것이오! 오죽하면 조선의 국정을 책임지는 우리 비변사가 이렇게 부탁하겠소? 요령껏 조총을 많이 구해 와야 북방 오랑캐를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오!”
“네, 대감. 잘 알고 있습니다. 신중하면서도 소문나지 않게 조총을 많이 구하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한 번 더 말씀드리건대 조총이 많으면 북쪽 여진족의 기마병에 맞설 조총부대를 만들 수 있소! 알다시피 임진왜란 전후에 우리 조선의 백성이 된 향화왜인이 있잖소. 그들 중에 조총을 만든 경험이 있거나, 조총을 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우리가 잘 대접하면서 이미 갖가지 총포 생산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은 일본에서 만든 조총이 더 뛰어나다 하오. 그러니 일본 조총을 최대한 많이 구해 와야 할 것이외다!”
한편, 명나라도 이미 조총 비슷한 무기가 있었거든. 그런데 왜 조선에 그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황제 폐하! 조선 또한 오랑캐의 나라이옵니다. 만약, 조선에 총포 생산법이나 화약원료인 염초제조법을 알려준다면 이는 오랑캐의 힘을 키우는 결과가 되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가르쳐 주지 말아야 하옵니다!”
사실 오늘날도 그렇잖아. 우리가 암만 우방이니, 혈맹이니, 전략적 동반자 관계니 하고 떠들어도 미국이나 일본, 중국이나 러시아가 자기 나라의 최고 무기를 우리한테 쉽게 줄 리가 없지. 그건 옛날에도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조선은 일본을 통해 조총과 염초제조법을 받아들이려 한 거지. 실제로 광해군(1575~1641) 때인 1617년에 일본으로 회답 겸 쇄환사를 보냈을 때는 조총을 어느 정도 구해왔어. 물론,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러다 1623년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가 즉위했지. 때마침 일본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이에미쓰가 새로 쇼군이 된 거야. 그래서 서로 축하 인사도 나눌 겸 1624년에 일본으로 회답 겸 쇄환사가 떠나게 된 거야. 하여튼, 1624년 회답 겸 쇄환사도 당시 사정에 따라 처음엔 조총을 많이 구하려 했대.
“대감! 광해군은 명나라와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다투는 데도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지 않소? 명나라는 어버이의 나라이고, 청나라는 오랑캐의 나라인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장군!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대감! 이참에 광해군을 내쫓고 새로운 임금을 세우도록 합시다!”
“어허, 거 참! 어쩌면 장군은 내 뜻과 그리도 똑같소이까? 빨리 뜻이 맞는 사람을 더 모으도록 합시다!”
1623년(광해군 15년) 조선의 당파 중 하나인 서인의 이귀(1557~1633), 이괄(1587~1624) 등이 주도해 새로 인조를 용상에 앉힌 사건이 발생해. 이름하여 인조반정이야. 인조반정의 결과 광해군은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고 조선의 외교는 ‘명나라를 따르고 청나라를 물리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돼.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길까? 맞아, 새로 힘이 막강해진 청나라가 조선을 곱게 볼 까닭이 없지. 그래 청나라는 명나라를 치기 전에 조선부터 치겠다고 단단히 벼르게 됐어. 사정이 이렇게 되자 조선은 남쪽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평화롭게 지낼 필요가 있었지. 그러니 겸사겸사 서둘러 일본으로 사절단을 보내게 된 거야.
“전하! 비변사의 주장에 따르면 명나라로 가는 사은사에게는 화약을 만드는 원료인 염포를 사 오도록 하고, 일본으로 가는 사신에게는 비단 수천 필을 팔아서 조총 수천 정을 사 오도록 해 경기도 군사를 조총으로 무장하자고 하옵니다!”
“그래요? 여진족이 갈수록 그 영향력을 넓히니 그것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전하. 그렇지 않아도 북쪽 국경에서 조총을 더 사 오라고 보채고 있고, 때마침 명나라 장수 모문용(?~?)까지도 여진족의 위협을 물리치려고 조총을 구해달라 합니다. 게다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을 겪으면서 병기도감에 있던 무기가 다 흩어졌기 때문에 당장 병사들이 싸울 무기조차 구하기가 무척 어렵사옵니다!”
“전하! 게다가 쓰시마의 심술도 여간 아니니 이번에 조총을 왕창 사 오는 것이 옳을 성싶사옵니다. 우리가 조총이 모자라는 것을 안 쓰시마가 글쎄 조총 1백 정을 달랑 보내주고는 그 대가로 인삼을 무려 5백 근이나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조총을 많이 사 오라 함이 가당하옵니다!”
“전하! 당치도 않사옵니다! 부모의 나라인 명나라로 가서 무기를 거래하거나 무역하는 것은 괜찮지만, 원수의 나라이자 오랑캐의 나라로 가서 무기 거래를 한다면 섬 오랑캐가 우리 조선을 깔보게 되므로 이는 옳지 못한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일본에 가서 조총을 사 오자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이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이처럼 통신사 파견을 앞두고 조총 문제로 조선 조정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어.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지. 결론은 일본에서 조총을 사지 않기로 했어. 그 바람에 인조 때인 1624년에 떠난 회답 겸 쇄환사는 조총을 아예 구하지도 못했지. 그나마 광해군 때인 1617년에 일본으로 떠난 회답 겸 쇄환사는 조총을 얼마라도 사 왔지만, 워낙 그 양이 적어서 조선의 국방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어. 그 결과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나 마나지, 뭐. 조선은 청나라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아.
생각하기)
흔히 역사에는 ‘만약에 ~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이 없다고 해요.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만약, 그때 비단이나 인삼을 팔아서라도 조총을 많이 사 왔더라면 조선과 중국, 일본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조선이 조총부대로 청나라군대를 막을 수 있었다면 조선과 중국의 역사도 많이 바뀌었겠죠? 또, 조선이 앞선 일본의 조총기술을 겸허히 받아들여 그 기술을 열심히 배우고 익혔더라면 조선과 일본의 역사도 많이 달라졌겠죠? 결국, 조총을 둘러싼 이 외교 활동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크게 뒤바꾼 셈이에요. 하여튼 나라의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실리와 명분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죠. 오늘날에도 이처럼 실리와 명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그렇다면 북한 핵 문제나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남북관계나 한미관계, 한중관계나 한일관계가 민감하게 돌아가는 지금, 우리는 실리와 명분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실리와 명분 외 또 다른 대안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