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사건사고 1-10
10. 에도에서 국서를 주고받아라!
통신사가 에도로 가서 행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조선 임금이 일본 쇼군에게 보내는 국서전달이야. 국서를 전하고 나면 일본 쇼군의 답서를 받아가야 하는데, 이때 국서를 전하는 의식을 ‘빙례’라 해. 국서를 전하고 회답서를 받을 때까지 사신은 에도에 머물러야 하거든. 국가의 최고 문서인 국서를 주고받아야 하니 서로 합의해야 하고, 서로가 만족하는 문안 작성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시간이 제법 걸려. 그러니 자연스레 에도에 오래 머물게 되지. 그럼 에도에 머무는 동안 사신은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낼까?
먼저, 바쿠후의 관료를 만나는 일을 해. 통신사를 맞이하는 관리인 관반 곧, 셋다이부교를 만나 서로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향후 일정에 대해 논의하지.
“참으로 반갑습니다! 먼 길을 오느라 무척 피곤하시죠? 괜찮으시다면 하루나 이틀쯤 푹 쉰 다음 환영 잔치를 베풀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네, 그런 자리라면 기꺼이 가야죠. 그래 그 날은 어떤 분들이 주로 오시나요?”
“그 잔치에는 여러 고위 관리들이 오실 겁니다. 통신사로 오신 세 사신은 물론이고, 중관과 하관까지 죄다 한 상씩 두루 받게 될 테니 피로를 푸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하하, 말씀만 들어도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합니다. 초대하시니 즐거운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환영 잔치가 끝나면 그다음으로 일본 쇼군이 보낸 가신인 로주가 와서 사신을 만나. 만나서는 주로 양국 군주의 안부를 묻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지. 어떤 덕담을 주고받냐고? 대충 아래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지, 뭐.
“멀리서 오느라 애 많이 먹었소. 쇼군 전하가 조선 임금 전하도 잘 지내는지 물으셨소!”
“네, 쇼군 전하의 관심 덕분에 잘 계십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 전합니다! 저희 전하께서도 쇼군 전하의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쇼군 전하도 잘 지내십니다. 감사하단 말씀을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이건 조선에서 가져온 인삼차인데 한 잔 맛을 보시겠습니까?”
“아이고, 이렇게 귀한 차를 얻어 마시다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요!”
이렇게 서로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특사가 파견되고, 그 특사와 미리 친분을 쌓는 자리라 보면 돼. 왜냐하면, 이후 할 일이 많거든. 이 만남이 끝나면 사신은 일본 관리와 서로 실무적인 업무에 집중해야 해. 그러니 사전에 서로 상대를 어느 정도 파악할 필요가 있는 거지. 앞으로 어떤 실무 일을 준비하냐고? 국서와 회답서에 대한 조문 합의를 해야 하고, 서로가 준비한 예물을 확인하지. 예물을 받을 사람은 누구인지, 그 사람에게 어떤 예물을 전해야 하는지, 예물의 품목과 수, 양 따위를 하나씩, 하나씩 죄다 점검해야 해. 그러니 이래저래 잡다한 일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지.
그렇게 지내다가 국서를 전하는 날이 다가오면 두 나라의 실무를 맡은 관리들 사이에선 갈등과 긴장이 펼쳐지기도 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1764년(영조 40년)에 통신사를 맞이한 일본 에도의 모습을 한번 볼까.
국서를 전하기로 한 날의 바로 전날에는 빙례 의식 순서를 상세히 쓴 「의주」가 나와. 그러면 세 사신과 상상관이 이것을 살펴보고 이상한 게 있으면 일본 관리에게 묻고, 때로는 필요에 따라 고치기도 해. 그때 적지 않게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하는 거야.
“귀국 일본에는 미안하오만 이번 빙례 때는 빈 술병과 빈 술잔으로 빙례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빈 술잔으로 빙례를 진행하다니요?”
“지난 몇 년 동안 조선에서는 흉년이 잦아 곡식을 아끼기 위해 술을 빚거나 마시는 것을 금하는 ‘금주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부탁하는 것이니 널리 양해를 구합니다.”
“아니, 그렇더라도 전례에 어긋나는 일인데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조선 시대만 해도 어르신 잔치건, 손님맞이 잔치건, 제사를 모시거나 할 때면 으레 술잔에 술을 붓잖아. 그런데 그런 잔치나 제사에 술을 따르지 않고, 빈 술잔으로 흉내만 내자는 거야. 그럼 어떻게 돼? 그렇지. 김빠진 맥주처럼 흥이 나지 않잖아. 따라서 일본의 처지에서 보면 빈 술잔으로 빙례 의식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거든! 그리고 외교에서는 예전에 행한 관례가 중요한데, 빈 잔으로 했다는 기록이 없어. 분명히 국서를 전한 뒤엔 서로 술잔을 주고받기로 돼 있는데, 그걸 어기자는 것이니 당연히 실랑이가 벌어질밖에! 하지만 조선 사신의 뜻이 워낙 완고하니 부득불 조선의 의견을 받아들였지. 그래서 술을 주고받을 때 하는 의식인 ‘헌배’도 빈 잔으로 하도록 정했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조차 서로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선 당연한 것이 안 될 수도 있잖아. 특히, 모든 일을 정해진 기준에 맞춰 처리하는데 익숙한 일본으로선 제법 당황했을 거야.
자,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드디어 국서를 전하는 빙례 의식이 진행돼. 그럼 국서를 전하는 빙례는 과연 어떻게 하는 걸까? 요점만 간단히 말하면 아주 단순해. 임금님의 국서를 일본의 쇼군에게 전하러 떠난 통신사지? 그러니 쇼군을 만나 국서를 전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쇼군이 세 사신에게 먼 길을 오가며 국서와 예물을 무사히 전해준 데 대하여 감사를 표하고, 임금님의 안부도 묻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거든. 그 당시로 한번 돌아가 볼까?
“세 사신이 모두 쇼군 전하 앞에 앉았으니 빙례를 시작하겠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행사를 시작하겠다는 개회사를 하는 거야. 그런 다음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사전에 합의된 순서와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거지.
“사신 가운데 당상역관은 조선의 국서를 쓰시마 영주에게 전하시오!”
그러면 국서가 쓰시마 영주에게 전해져.
“쓰시마 영주는 국서를 받아 쇼군 전하 가까이 모시도록 하시오!”
이렇게 국서가 자리를 잡으면 이제 세 사신이 등장할 차례야. 빙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지. 국서와 쇼군에게 예를 표해야 해.
“삼사는 국서 앞에서 사배례를 하시오!”
이렇게 절을 네 번 하는 것을 ‘사배례’라 해. 그런데 이를 두고도 조선과 일본은 심하게 다투었어. 왜냐고? 절을 네 번 한다는 것은 신하의 예를 취할 때만 하는 것이거든. 그러니 국서 뒤에 있는 쇼군에게 신하의 예를 갖춘다는 것이 되므로 사배례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조선의 원칙이었지. 그러자 일본도 가만있지 않았어. 사신은 왕도 아니고 신하인데 어찌 사배례를 할 수 없냐고 따졌지. 그래도 삼사가 흔들리지 않자 회유를 해. 아니, 눈앞에 있는 조선 국왕의 국서에 대한 사배례인데, 사배례를 거부한다면 조선 국왕의 신하가 아니란 말이냐며 몰아붙였지. 결국, 일본 쇼군에 대한 사배례가 아니라 조선의 국서에 대한 사배례를 한다는 뜻으로 합의를 했어. 세 사신이 한발 물러선 셈이지. 그래서일까 통신사로 나선 삼사도, 그 밖의 관리도 사배례를 하면서 때때로 굴욕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해.
이렇게 사배례가 끝나면 술자리가 열려. 이 술자리는 오직 빙례란 의식을 위한 술자리일 뿐 정말로 술을 거나하게 마시는 자리가 아니야! 이는 그만큼 통신사가 오갈 때 유교적 형식이 중요했음을 뜻해. 하긴 유교 예법이 중요했던 때이고, 두 나라 또한 서로 평화가 필요한 때였으니 형식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법이야.
그렇게 하면 통신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국서전달의 마무리, 빙례가 끝나는 거야. 빙례가 끝나면 쇼군의 뜻에 따라 쇼군의 세자인 약군도 함께 하는 잔치가 화려하게 열려. 이 잔치는 통신사로 나선 사신이 그동안 애썼음을 달래고, 쌓인 피로를 풀도록 베푸는 잔치야. 그러니 신나게 악기도 연주했는데, 주로 아악을 연주했다고 해. 그 음악에 맞춰 춤까지 신나게 춘 것은 물어보나 마나지! 약군이 베푸는 잔치는 대체로 국서를 전하는 날에 열려. 한때 잔칫날을 바꾸기도 했지만, 대개는 국서를 전하는 당일에 잔치를 열었어.
이렇게 국서전달 의식과 잔치가 모두 끝나면 통신사는 로주를 비롯한 일본 관리의 정중한 배웅을 받으며 에도성에서 빠져나와.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면 일정이 비로소 끝나는 거지.
그럼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먼저 처음부터 통신사와 동행한 쓰시마 다이묘가 국서전달이 무사히 끝났음을 기뻐하는 인사를 하러 와. 일본에서 인사를 왔으니 다음은 누구 순서야? 맞아! 이번에는 조선의 차례니 통신사로 따라나선 당상역관이 로주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고관을 찾아가 국서전달이 잘 끝나도록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해. 그렇게 하면 국서를 주고받은 예를 어느 정도 한 셈이지. 이제 남은 일은 일본 쇼군이 조선 임금에게 전할 회답 국서를 기다리는 일뿐이야. 그때까지 며칠 동안 통신사는 에도의 유학자나 관리와 시를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서로의 사정을 파악하기도 하는 거야. 그러니 통신사 일행은 국서를 전달한 뒤에도 편히 잘 쉬지를 못했대. 실제로 통신사 행렬이 머무는 곳이면 일본 내 어디를 가나 늘 사신을 만나러 오는 일본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거든. 그러니 어떡해? 오늘날 K-POP 스타를 보러오듯 오는데 또 만나봐야지.
그건 에도에서도 마찬가지야. 아니, 에도에서 가장 바쁘지! 며칠 동안 에도에서 가장 뛰어난 유학자와 그 제자, 자녀와 더불어 시와 글을 주고받는 일을 쉼 없이 되풀이하거든. 일본에서는 유학의 선진국인 이웃 나라 조선에서 온 사신을 통해 앞선 학문을 받아들이기도 할 겸, 자기네가 갈고닦은 실력을 검증받기도 할 겸 앞다투어 통신사 사신과 만남을 신청해. 따라서 사신은 목적지인 에도에 도착해 국서를 전하고 나서도 푹 쉬기는커녕 밤낮으로 고된 일정에 시달리는 셈이지. 그러다 통신사 일행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어.
“정사 영감! 바쿠후 쇼군이 보내는 회답 국서가 도착했다 하옵니다!”
“그래요? 어디 봅시다! 회답 국서니만큼 글자 하나도 허투루 읽지 말고 눈여겨 잘 읽어야 할 것이오. 잘못된 글은 없는지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새로 고치도록 합시다! 아울러 전하와 사신, 수행원에게 주는 갖가지 예물 목록도 꼼꼼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 주는 예물은 물품이 다 갖춰지면 에도성 안에 풀어놓고 쇼군이 몸소 하나씩 꼼꼼히 살펴봐. 그런 다음 국서에 딸린 문서로 예물 목록을 덧붙여 로주를 통해 통신사가 머무는 객관으로 보내게 돼. 그때! 때에 따라선 회답 국서에 적힌 글자를 두고 통신사와 바쿠후 사이에 다툼도 있지만, 대개는 서로 머리를 맞대 어렵사리 문제를 풀곤 했대. 일본이 주는 예물은 목록을 전한 다음에 따로 보내줘. 이렇게 에도성에서 쇼군의 답서와 예물을 받고 모든 준비가 다 끝나면 통신사는 드디어 에도를 떠나게 되는 거야.
“이제 조선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에도에 머물 동안 마음 써 준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쇼군에게도 꼭 인사를 전해주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귀국으로 향하는 머나먼 길, 몸 성히 잘 돌아가길 빌겠습니다!”
국서전달을 무사히 마친 통신사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조선 땅으로 발걸음을 서두르게 돼. 그리고 그 성과에 따라 발걸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거지!
생각거리)
통신사가 국서를 전할 때 쇼군도 함께 그 자리에서 행사를 같이 진행한다 했어요. 이어, 잔치도 베풀고요. 그런데 이런 행사는 두 나라가 유교 예법의 영향을 받은 탓에만 하는 절차가 아니에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라 사이에는 그런 형식을 따르는 외교절차가 대부분 있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형식이 중요한 거죠. 왜, 새 술은 새 부대에 따르라는 성경 말씀도 있잖아요. 그 말은 경우에 따라선 그만큼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거죠. 그리고 가만히 따져보면 그런 형식의 중요성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생활을 돌아보면 이런 형식에 치우친 나머지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보기로 결혼식을 들 수 있지요. 그렇다면 형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그 내용을 한층 빛나게 하면서도 본래의 목적에서 어긋남이 없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을 지닐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