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사건사고 1-9
9. 당당하게 에도 길을 오가도록 하라!
통신사가 들리는 마지막 도시는 오늘날의 도쿄 곧, 에도야. 에도에 사는 쇼군에게 조선 임금이 보낸 국서를 전해야 하니 마땅히 에도가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지. 통신사가 오간 때는 전쟁이 없던 때라 에도는 도시문화가 활짝 피어났어. 그 때문에 사람들로 무척 붐볐지. 그러다 보니 조선에서 온 통신사를 구경하려고 에도 백성이 몰려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일본 바쿠후는 통신사에 대하여 무례하거나, 함부로 접근하는 것 등은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왜 통신사 행렬은 일본 백성들이 마음껏 볼 수 있도록 한 걸까? 그건 일본 바쿠후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어.
“통신사가 일본을 찾아오는 것은 쇼군 전하가 살아있을 동안 딱 한 번뿐인 크나큰 행사이고, 무엇보다 쇼군에 오른 걸 축하하러 오는 외교사절이니만큼 그 접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통신사 접대에 소홀함이 없도록 여러 번에 명령을 내리고, 통신사가 에도에 닿으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에도 백성이 통신사 행렬을 구경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통신사에게도 에도의 힘을 보여줄 수 있고, 에도 백성에게도 통신사를 통해 바쿠후와 쇼군의 권위를 드높이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이제 왜 그런지 알겠지? 사실 통신사 일행만 해도 때로는 오백 명쯤 되거든. 그런데 통신사가 가져온 짐을 나르는 일본 일꾼도 있지, 쓰시마에서부터 따라온 호위무사까지 합치면 그 인원 수천이 넘어. 그러니 그 많은 사람과 수레가 통신사 삼사를 중심으로 뒤따르면서 움직이잖아. 수많은 깃발을 나부끼며 음악 소리에 발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장관이야! 그게 얼마나 큰 구경거리였는지는 그 당시 에도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어.
“우와, 자네는 정말 좋은 곳에 자리 잡았구먼. 혹시 집안에 바쿠후와 관련된 힘센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삼촌이 바쿠후에서 일하고 있거든! 그래서 일찌감치 길목 좋은 곳에 자리 하나 얻었지! 자네도 올 줄 알았으면 내 미리 힘을 좀 써 둘 걸 그랬네, 그려!”
“어, 아저씨도 용케 좋은 자리를 잡으셨네요?”
“이 사람아, 말도 말게. 이 자리 구한다고 은자를 열 냥이나 더 줬다네!”
에도 백성이 통신사 행렬을 구경하는 데는 무려 한나절이나 걸렸어. 호위하는 무사와 예물까지 죄다 합치면 무려 수천이나 되는 행렬이 에도 길을 지나야 했으니까 그럴 만하지. 미리 자리까지 잡으려고 하면 하루 내내 길에서 머문 셈이나 마찬가지야. 마침 통신사가 지나는 장면을 적어놓은 기록이 있으니 같이 살펴볼게. 다음 글은 1636년 1월 4일 에도에 와 있던 나가사키의 네덜란드인이 쓴 글이래. 그러니 조선과 일본의 시선이 아니라 제삼자의 눈으로 통신사 행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조선 사절 두 사람이 통신사 행렬과 더불어 많은 일본 귀족을 뒤따르게 하고, 쇼군이 있는 에도에 도착해 숙소로 향했다. 무용대가 앞서고, 피리와 북의 연주가 있고, 짐꾼 오륙십이 짊어진 가마가 그 뒤를 따랐다. 가마는 붉은 비단 장막으로 둘러쳐 있었다. 잠시 뒤 악기 연주가 시작되었고, 푸른 깃발을 손에 들고 말을 탄 젊은이가 뒤이어 왔다. 끝으로 조선 사절의 예물과 짐을 운반하는 말이 일천 필쯤이나 지나갔다. 이 행렬이 모두 지나가는 데 다섯 시간쯤 걸렸다.”
어때, 대단하지? 요즘도 행렬하면 초파일 연등 행렬, 놀이공원에 가면 볼 수 있는 서양식 행진, 영어로 parade(퍼레이드)가 있브러어. 아니면 나라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장에 그런 행사가 열리지. 그런데 그걸 이처럼 한나절씩 하진 않잖아. 그러니 통신사 행렬이 그 당시엔 얼마나 엄청난 행사인지 엿볼 수 있는 거야. 또, 일본인 처지에서 보자면 언제 또 이렇게 조선이란 나라에서 온 외교사절단은 물론이요, 빼어난 솜씨를 지닌 무용수, 음악대, 마상재 등을 만나보겠어? 요즘 말로 K-POP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것이나 다름없거든. 그러니 서로서로 앞다투어 통신사 행렬을 맞이하려고 한 게지.
그렇다면 일본이 아니라 조선의 사신이 본 에도와 에도 백성은 어땠을까? 다행히 통신사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사절단이 남긴 기록이 있으니 그 기록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거야, 그치?
먼저, 1763년 통신사 정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엄(1719~1777)의 말을 들어볼게.
“에도 거리가 구경꾼으로 가득해 마치 사람으로 벽을 쌓은 듯하다!”
표현도 참 멋지지 않니? 사람으로 벽을 쌓은 듯이 인파가 몰린 걸 시적으로 표현했어. 그럼 이번엔 다른 분의 말을 들어볼까. 조엄보다 약 백 삼십 년이나 앞선 1636년에 통신사 정사로 나선 임광(1579~1644)이 한 말이야.
“색을 칠한 주렴 자리는 무사의 자리이며, 길 양쪽에는 창과 검을 세우고 무릎을 꿇고 있는 병사가 줄을 지어있고, 길에는 봉을 가진 사람이 열을 지어 늘어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함부로 지나갈 수 없도록 막고 있다.”
임광은 그 많은 인파를 일본에서 어떻게 통제했는지도 자세히 내보였지? 왜, 오늘날도 거리에서 무슨 축제나 행사를 할 때면 경찰관이나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경찰봉을 들고 도로를 건너는 시민을 통제하잖아. 그것이랑 똑같은 모습이야. 재미난 것은 그 당시에도 길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배치될 만큼 인파가 엄청 몰렸다는 거지. K-POP 인기랑 뭐 다를 거 없어. 이번엔 시대적으로 임광과 조엄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1719년에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을 다녀온 신유한(1681~?)이 쓴 『해유록』을 통해 일본 상황을 살펴볼게.
“구경하는 남녀가 길 양쪽을 가득 채웠고, 무사를 위한 자리도 구경꾼으로 가득 차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오사카나 교토에 견주어 세 배는 넘어 보인다.”
신유한의 말에 따르면 오사카나 교토에서도 통신사를 보려는 행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어. 그런데 에도에 비하면 견줄 바가 아니지? 그보다 세 배나 넘는 인파가 몰렸다 하니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어. 오늘날 도쿄 신주쿠를 떠올리면 얼마나 많은 인파가 물밀 듯이 오가는지 쉬 알 수 있잖아. 도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본 제일의 도시로 손색없으니 인파가 몰릴 수밖에 없지. 신유한의 입을 빌리자면 당시 통신사 행렬을 구경하기 위한 자리 즉, 관람석은 일반 백성을 위한 좌석과 무사를 위한 좌석이 따로 구분했나 봐. 그런데 신분이 높은 무사 자리까지도 일반 백성이 꽉 메운 것을 보면 통신사만큼 인기몰이에 성공한 연예인도 없다 싶어, 그지? 당연히 엄청난 인파에 통신사 사신들도 놀란 표정이고 말이야.
자, 이렇게 에도에 닿은 통신사는 수개월 동안 이어진 여독을 풀 겸 며칠을 머물게 돼. 휴식도 취하고 찾아오는 일본인도 만나고 한숨 고르는 거지. 그런 다음에 일본과 국서를 전달하기 위한 실무협상이 종료되고 날짜가 확정되면 국서를 전하러 일본 쇼군이 사는 에도성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럼 지금부터 에도성으로 가는 날, 통신사는 어떻게 에도를 행진하는지 알아볼 거니 두 눈 동그랗게, 두 귀 쫑긋하고 잘 들어봐!
국서를 전하는 날 정사와 부사, 종사관 세 사신은 금관과 옥패, 조복으로 옷차림새와 옷매무새를 단정히 차려입어. 나머지 통신사 일원도 마찬가지로 의식에 필요한 복장을 하지. 군관은 마땅히 군복을 입을 테고, 나머지 관리나 따라온 사람도 다 저마다 입어야 할 관복을 입고 에도성으로 향하는 거야. 그럼 어디 통신사가 가는 길을 슬슬 따라가 볼까.
숙소를 빠져나온 통신사 행렬은 에도 시내를 가로질러 행진해. 에도성을 향하는 거지. 그러다가 마침내 에도성에 이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게 에도성의 정문인 오테몬이야. 거기서부터 더더욱 엄격한 예법에 맞춰 통신사 행렬이 움직여야 해. 옛날엔 조선이나 중국, 일본 모두 성으로 들어갈 땐 신분에 따라 먼저 말이나 가마에서 내렸어. 그리곤 그다음부터는 걸어서 움직이는 거지. 그러니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가장 늦게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는 거야. 그게 당시의 예법이야. 좀 더 살펴볼게.
정문인 오테몬에 이르면 통신사 관리 중 상관이 말에서 내려야 해. 그리고 행진에 흥을 돋우었던 군악도 멈추는 거야. 관리 중 통신사 하관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기다려야 해.
이제, 인원이 준 통신사 행렬이 성 밖에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성한 큰 못인 해자를 건너 다음 문에 닿았어. 그러면 그곳까지 가마를 타고 온 사람도 내려야 해. 점점 에도성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는 사람 수도 줄고, 가마에 탈 수 있는 사람도 줄어드는 거야.
다시 다음 문에 이르면 당상역관도 내리고, 이윽고 맨 마지막으로 나카고몬이란 문의 돌담 가까이에 가면 통신사 관리 중 가장 높은 세 사신도 수레에서 내려야 해. 그러면 그때 일본 바쿠후의 고위관리인 셋다이부교와 메츠케가 통신사 사신을 맞이하러 와. 그때 국서는 당상역관이 받들고 나아가고.
국서를 맞이하는 의식을 치르는 건물 현관 앞마루에는 바쿠후의 주요 관리가 모두 나와 사신을 맞이하는 거야. 그런 다음 삼사는 앞장서 가다가 마침내 쇼군이 기다리는 방으로 가서 쇼군을 만나게 돼. 요즘도 중요한 외교행사가 열리면 참석자의 좌석 배치가 미리 다 되잖아. 그때도 마찬가지야. 지금 우리가 마주한 광경은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의 실권자인 쇼군 곧 오늘날 일본 총리의 관저에 들어선 거나 진배없지.
국서는 방의 서쪽에 두고, 세 사신은 서쪽을 바라보며 앉고, 쓰시마 영주는 검은 옷을 입고 삼사 옆에 앉아. 그 뒤로 붉은 옷을 입은 여러 번의 다이묘가 왼편으로 줄지어 앉는 거지. 그러면 곧 국서를 전하는 의식인 빙례가 시작되는 거야.
빙례를 마치고 무사히 국서를 쇼군에게 전달한 통신사는 쇼군이 베푸는 연회에 참석한 다음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거지. 요즘도 외국 정상이나 주요 외빈이 찾아오면 오찬이나 만찬을 하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연회까지 마쳤으니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데, 에도성을 나갈 때나 들어갈 때나 그 행렬은 마찬가지지.
그렇다면 통신사 행렬은 대체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통신사 행렬의 맨 앞에는 눈부시도록 화려한 깃발을 든 젊은이가 성큼성큼 걸어가. 길을 깨끗이 하고 길에서 물러나라는 위엄을 갖춘 청도 깃발을 선두로 여러 깃발이 펄럭이는 거지. 그 뒤를 퉁소와 대금, 징과 꽹과리 따위를 앞세운 악대가 따르는 거야. 에도 하늘에 조선의 악기에서 연주되는 힘차고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겠지? 이어, 씩씩하고 날쌔게 생긴 무관이 힘차게 걸음을 내딛고, 그 뒤를 국서가 든 가마가 뒤따르지. 국서는 은장식과 붉은 옻칠을 한 상자에 들어 있는데, 상자에는 황금빛 찬란한 용이 하늘로 치솟을 듯 힘차게 그려져 있어. 국서가 든 가마 뒤로는 정사와 부사, 종사관이 탄 가마가 줄을 지어 에도성으로 향하게 되지. 그 가마와 가마 사이에는 수행하는 조선 병사와 일본 무사가 호위하고, 말을 탄 사람도 수도 없이 이어진대. 이처럼 통신사에 참가한 일원들의 행렬이 끝나면 뒤이어 일본 쇼군과 바쿠후 관리에게 전할 예물도 수레마다 한가득 싣고 행렬에 같이 동참해. 참고로 쇼군에게는 말안장과 호랑이 가죽 같은 짐승 가죽, 인삼과 종이, 여러 가지 비단과 모시, 삼베와 꿀, 매 따위를 선물로 전한대.
어떠니? 청도기를 휘날리며 걸음걸이도 씩씩하게 에도 길을 나아가는 통신사 행렬! 생각만 해도 뿌듯하지?
생각거리)
쓰시마 사람은 예로부터 장사와 이재에 눈이 밝았다고 해요. 실제로 그들은 무역이 막혀 생활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나라로 쳐들어가 도둑질과 노략질까지도 서슴지 않았어요. 그건 삼국 때부터 시작해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전역에 출몰해 피해를 입힌 왜구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중국도 왜구로 인해 고생을 무척 했고요. 하여튼, 통신사 행렬을 책임지고 끝까지 호위하는 건 쓰시마예요. 쓰시마 사람은 통신사 행렬이란 중요 행사를 절대로 그냥 놓칠 수 없어요. 그래서 쓰시마의 지도자는 조선과 일본의 주요 외교행사인 통신사 행렬을 빌미로 온갖 돈벌이에 혈안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에도 종종 그런 사회 지도자가 있지요? 이탈리아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프란체스크 알베로니는 『지도자의 조건』이란 책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를 바탕으로 지도자에 대한 조건을 제시했어요. 그는 원대한 계획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지도자(창조적 기업가형 지도자)와 단순히 자리를 차지하고 직함을 늘리고 권위를 누리는 데 골몰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지도자(직업 정치인형 지도자)로 구분하는데요, 이런 구분은 어떤 분야의 지도자에게도 다 적용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자기 둘레나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서 창조적 기업가형 지도자와 직업 정치인형 지도자로는 어떤 사람이 있는지, 그런 사람의 장단점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토론을 즐기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