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1-7
7. 귀 무덤이야, 코 무덤이야?
1607년 부산을 떠나 줄곧 바닷길로만 에도를 향해 나아가던 사절단은 4월 8일 오사카에 닿았어. 이제 오사카에서부터 에도까지는 바닷길이 아니라 뭍으로 난 길을 따라 가는 거야.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길에 삼사는 이상한 얘기를 듣게 됐지. 글쎄, 교토에 조선인의 ‘귀 무덤’이 있다지 뭐야!
1607년 부사로 일본에 간 경섬(1562~1620)이 쓴 『해사록』에 따르면 분명히 교토에 ‘귀 무덤’이 있다고 돼 있거든. 귀 무덤? 정말 어떤 무덤인지 궁금하지 않아?
때는 1597년이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시 대군을 보내 아름다운 조선의 땅과 강을 피바다로 물들였어. 이름하야 정유재란이지. 그때 히데요시는 왜군에게 상상할 수도 없이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리게 돼.
“우리 왜군이 조선에서 전투를 피하려 한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면 조선에 가 있는 일본 병사에게 내 명을 전하라! 앞으로 조선인을 죽이면 반드시 그 코를 벤 뒤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내도록 하라!”
히데요시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조선으로 쳐들어간 왜군이 전투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조선군과 싸운 흔적을 제 눈으로 직접 보겠다며 이런 명령을 내린 거야. 하지만 암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그처럼 무서운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모르겠어!
“조선인은 한 명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목을 베어라. 그리고 코를 베는 것도 잊지 마라!”
“살려주세요, 네? 우리는 병사도 아니고, 그냥 농사짓는 백성입니다!"
“잔말이 많다. 여자고, 아이고 가리지 말고 모두 베어 버려라! 병사마다 적어도 코를 셋은 베어야 목표량을 채울 수 있다!”
이렇듯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왜군은 조선 관군은 물론이고, 농민이나 여자, 심지어 아이까지 목을 벤 뒤 그 코를 베어 갔던 거야.
“장군님! 그런데 저희가 벤 코는 어떻게 일본으로 보내면 좋겠습니까? 가다가 배에서 다 썩을 텐데요.”
“이런 못난 놈들 같으니! 잘라낸 코는 식초와 소금, 석회로 썩지 않게 처리하면 되지 않느냐!”
“하이!”
사람의 몸이 죽으면 썩게 되잖아. 그러니 우리 선조의 시신에서 베어간 코가 썩으면 자기네들이 조선군과 싸웠다는 증거를 히데요시에게 남기지 못하니 그렇게 썩지 않도록 처리한 거야. 그런 머리로 사람 살리는 일에 힘썼으면 오죽 좋으련만! 만약, 그랬다면 우리나라와 일본 두 나라는 진작부터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웃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장군님! 베어온 코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먼저 코 수령증을 만들도록! 코를 가져온 병사가 어느 부대의 누구인지 적고, 코를 몇 개 가져왔는지 적어라! 그러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장군님! 그럼 썩지 않도록 처리한 코는 어떻게 옮기면 될까요?”
“방부 처리된 코는 죄다 나무통에다 넣되, 통마다 코를 1,000개씩 넣도록 해라!”
“하이!”
조선으로 온 왜군은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남원성과 충청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조선 사람을 죽이고 나면 마치 나뭇가지를 베듯 정말로 코를 싹둑 베가는 거야. 더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왜군이나 히데요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는 거지.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자기네끼리 치고, 박고, 싸운 전국시대가 있었잖아? 그때 일본의 무사는 적군의 목을 많이 베어 대바구니나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걸 큰 자랑거리로 여겼거든. 그러니 조선에 와서도 그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써먹은 거지. 다만,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좀 먼 곳에 있으니까 벤 머리를 죄다 가져가려면 무척 난감하겠지? 그래서 코만 베어 소금에 절여 보내라고 한 거야.
지금 남아있는 코 수령증을 기준으로 짐작해보면 그 때 약 10만 개가 넘는 코가 잘렸음을 알 수 있어. 엄청나지? 이런 걸 보면 어떤 사실을 추측할 수 있을까? 맞아! 왜군은 조선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음을 뜻하는 거지. 이렇게 끔찍하게 베어진 코는 일본의 히데요시에게 전해졌고, 히데요시는 그것을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그 코를 잘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주라 했대. 참말로 어이가 없지?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은 이때 딱 들어맞는 말이야! 애당초 그런 명령을 내리지 말아야지! 아무튼, 바로 그 코 무덤이 앞에서 말한 귀 무덤이야. 코 무덤인데 왜 귀 무덤이냐고? 그건 잠시 후에 밝혀질 거야.
『해사록』에 따르면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1593~1615)’는 코 무덤에다 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으니 더더욱 기가 찰 수밖에 없어.
“너희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 나라의 운수가 그렇게 된 것이다!”
죄 없이 죽은 사람의 원혼을 위로하려면 먼저, 자기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에 대하여 마땅히 사죄하고, 그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이자 순리겠지? 그런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는 뭐라고 해? 자기들이 저지른 짓에 대하여 사과는커녕 되레 딴소리를 하고 있잖아. 즉, ‘너희 나라가 힘이 약해서 우리한테 침략당한 거니, 우리를 원망하지 말고 너희 나라를 원망하라.’는 말이랑 뭐가 달라? 저런 식으로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되레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니 죄 없이 숨진 조선인 중 그 누가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 히데요리는 오사카의 다이묘로 있었으므로, 통신사가 지나면 응당 서로 만나서 인사를 나누도록 함이 예의야. 하지만 우리 조선의 통신사는 조선의 원수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만날 아무런 까닭이 없다 하여 끝끝내 히데요리를 만나지 않았대.
그런데 좀 헷갈리는 게 있지? 뭘까? 맞아, 바로 이 코 무덤의 이름이야! 어떤 이는 이 무덤을 두고 ‘귀 무덤’이라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코 무덤’이라 일컫고 있지? 왜 그럴까? 교토에 있는 이 무덤의 올바른 이름은 과연 어느 것일까? 코 무덤일까, 귀 무덤일까? 이걸 알려면 앞서 말한 코 수령증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수령증 하나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조선 금구와 김제에서 거둔 코의 수가 3369개입니다.”
누가 봐도 분명히 코 무덤이라고 돼 있지? 그런데 왜 코 무덤이 귀 무덤으로 바뀌어 전해지는 걸까?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토에 있는 이 무덤 앞에 세워진 안내 글에는 ‘이총(귀 무덤)’이라고만 돼 있었거든! 그러다가 요즈음 들어 ‘이총과 비총(코 무덤)’을 같이 써 두었어. 마음 같아서는 귀 무덤과 코 무덤을 같이 써둘 게 아니라 역사적 사실대로 코 무덤만 써 두라고 하고 싶지. 하지만 일본은 역사 기록에 귀 무덤과 코 무덤 둘 다 있으니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해. 그러나 임진왜란 때 기록에 따르면 코 무덤이 분명한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적어도 왜 한 무덤을 두고 귀 무덤과 코 무덤을 둘 다 써 둔 것인지 그 까닭 정도는 밝혀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일본도 귀 무덤이 코 무덤임을 잘 알고 있을 거야. 왜냐하면 히데요시가 조선 사람의 코를 본 뒤 그 코를 잘 묻어주고 제사까지 지내주라고 했다고 앞서 말했지? 따라서 처음에는 코를 묻었다 해서 ‘코 무덤’이라 했대. 그러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하야시 라잔(1583~1657)이 ‘코 무덤이라 하면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니까 귀 무덤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해서 그 뒤로 귀 무덤이라고 바뀌어 전해지는 거래. 그러니 코 무덤을 귀 무덤으로 바꾼 것만 봐도 일본 사람 스스로 자기들이 조선 땅에서 한 짓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짓인지 잘 알고 있던 셈이지.
임진왜란을 겪은 뒤 유성룡(1542~1607)이 쓴 『징비록』을 보면 ‘적병은 우리 사람을 붙잡기만 하면 코를 베어 위세를 보인다.’는 대목이 있어. 일본인이 작성한 코 수령증이 아니라 우리가 쓴 기록에 따라도 코를 벤 것임엔 틀림없지. 그리고 그런 증거는 일본 승려 게이넨이 쓴 일기에도 나와 있고. 게이넨이 쓴 일기를 보면 일본인이 왜 코 무덤을 귀 무덤으로 바꾸려 한 건지 그 이유도 살짝 엿볼 수 있어.
「역사에서 이 전쟁처럼 슬픈 것은 없다. 병사가 가는 곳마다 살육을 일삼고 불을 지르니 그 연기가 마을마다 가득하다. 조선인의 머리와 코를 대바구니에 담으니 대바구니가 가득했고, 병사가 모두 피투성이가 된 바구니를 허리춤에 달고 싸웠다.」
이런 옛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분명히 코 무덤이 정확한 이름일 거야. 이처럼 코 무덤이 귀 무덤이 된 것은 하야시 라잔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어. 하야시 라잔은 코 무덤이 갖는 잔임함을 고민하다가 코 무덤이라 새긴 비석을 없애고 귀 무덤이라 한 것이 지금까지 남아온 거지. 그러다가 얼마 전 그 무덤에 관심을 가진 한국과 일본의 여러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자 마지못해 그 ‘귀 무덤’ 옆에다 ‘코 무덤’도 같이 써놓게 된 거야.
그런데 이런 코 무덤은 교토에만 있는 게 아니야. 오카야마현 비젠시에도 ‘천인 코 무덤’이 있어. 조선인의 코가 무려 천 개나 묻혀있다는 거지. 이런 유적만 보더라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지 짐작이 갈 거야. 생각할수록 왜군의 잔인하고 끔찍한 짓에 몸서리쳐져.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머리를 허리춤에 달고 다니고, 그 코를 베어낸다는 거지?
생각거리)
일본은 예로부터 자기에게 불리한 역사나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걸 자기한테 유리하게 바꾸려 해요. 그 방법으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온갖 사료를 다 모는 거예요. 그 다음 그 사료를 연구해 조금이라도 자기네가 유리하다 싶은 사료를 근거자료로 삼고 명분을 내세우지요. 일제강점기 때 우리를 교육시키면서 행한 ‘임나일본부설’은 그 좋은 본보기라 하겠어요. 오늘날 지도에다 ‘동해’ 표기를 병기하자는 우리의 주장에 대해 일본이 대응하는 방식도 그렇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런 일은 역사를 살펴보면 비단 일본만 그런 게 아니에요. 중국도 마찬가지였어요. 심지어 오늘날에도 중국은 소위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마저 자기네 마음대로 뜯어고치려 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앞으로 이웃나라의 횡포에 말려들지 않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당당히 잘 지키면서 그들과 대등한 관계를 잘 맺어나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