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조선통신사가 조공을 바치러 갔다고?

조선통신사 사건사고 1-6

by 구경래

일본의 어떤 학자들은 ‘통신사는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온 사절단’이라고 주장해. 통신사가 쇼군을 비롯해 바쿠후의 많은 사람에게 줄 예단을 가져오고, 바쿠후가 바뀔 때마다 인사를 하러 오기 때문이래. 그렇다면 통신사가 정말로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간 사절단이었을까? 그런 사정을 살펴보려면 그 당시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어.


“이 길은 너무 좁아 가마가 드나들기 힘드니 새로 넓히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 집은 너무 낡아 보기 흉하니 허물어버리고 새로 짓도록 하시오!”

“쓰시마 감시관! 그게 무슨 소리요? 아직 쓸 만한 집인데 허물라니요?”

“아니, 쇼군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는 거요? 통신사가 머무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하라고 한 말씀을 그새 잊었단 말이요?”


일본에서 통신사가 오가는 지방의 여러 곳에서는 쓰시마에서 온 감시관과 그 지역의 번 사이에 이런 실랑이가 한 번씩 오갔어. 통신사를 모실 때 섭섭함과 소홀함이 없도록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는 쪽과 그 준비가 너무 힘들다는 쪽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지. 이처럼 통신사를 맞이하는 일은 쇼군의 명령에 따라 아주 정중했어. 어느 정도 정중했는가 하면 마치 쇼군이 행차하듯 했대. 그러니 통신사가 오가는 길목에 있는 번에서는 앞다투어 통신사를 잘 모시려 한 거야. 그래야 자기 번의 체면도 서고, 쇼군에게도 잘 보일 수 있으니까!


자, 그럼 지금부터는 실제로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보면서 통신사가 조공사절단이었다는 일본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살펴볼 참이야. 먼저, 1711년 히로시마 산노세항으로 가 볼까.


산노세항은 히로시마 번에 있는데, 시모노세키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뱃길 사이에 있어, 그러니 배가 머물기에 딱 좋은 곳이야. 에도시대 때 히로시마 번 안에서 오직 하나뿐인 해상역인 데, 산노세에서 나가간키라고 일컫는 큰 선착장이 있었거든. 바닷가에다 계단식 의자처럼 생긴 돌로 만든 선착장을 두었는데, 요즘도 가서 볼 수 있어. 또한, 여관과 관청도 있으니 시설도 꽤 좋았거든. 따라서 시모노세키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바다인 세토내해를 지나는 배가 머물기엔 딱 괜찮은 곳이지. 주로 규슈 지방의 다이묘나 네덜란드 상인, 그밖에 세토내해를 지나는 배가 오가며 쉴 수 있었대. 통신사도 마찬가지여서 통신사를 태운 배가 히로시마 번으로 들어오면 반드시 산노세항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던 거야.


“다이묘님! 쓰시마에서 전해온 데 따르면 통신사가 세토내해를 9월쯤 지날 것이라 합니다!”

“그래? 그러면 지금부터 준비를 서둘러야겠구먼. 그러면 당장 무슨 일부터 하는 게 좋겠소?”

“곧장 쓰시마로 가신부터 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통신사 정사나 부사, 종사관이 어떤 사람인지,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향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겁니다. 또한, 통신사 배에 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죄다 싹 조사해서 알리게 하면 통신사를 맞이할 때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가신이란 큰 귀족이나 지방의 영주나 고위 관리 아래에서 벼슬을 얻어 일하는 사람을 말해. 과거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에 있었어. 따라서 일본에서도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가 중요한 업무를 처리할 때 그 다이묘를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하라 보면 돼. 그처럼 믿을 수 있는 신하를 신속히 쓰시마에 파견해서 정보를 빼낼 정도로 빈틈없이 통신사를 맞이했던 거야. 그래야 미리미리 필요한 것들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었던 게지.


“옳은 말이오. 그럼 가신은 빨리 쓰시마로 가서 통신사와 관련된 소식을 낱낱이 보고하도록 하시오! 그다음 할 일로는 또 뭐가 있겠소?”

“항구부터 고치는 게 좋겠습니다. 선착장이 낡아서 무너진 곳, 부서진 곳을 미리 고쳐놓으면 혹시라도 통신사가 탄 배가 잘못될 일이 없습니다!”

“알겠소. 그것 말고 다른 일은 없소?”

“통신사가 묵을 숙소도 새로 손질하는 게 좋겠습니다. 칠도 새로 하고요!”

“좋소! 그런데 그 모든 준비를 하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할 텐데?”

“걱정을 마십시오! 통신사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진작에 준비해 놓았습니다. 길 안내인, 짐 운반인, 청소부, 요리사, 호위 무사 등 저마다 할 일을 다 맡겼습니다. 모두 759명을 뽑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또한, 통신사가 머물 다음 항구인 도모항까지 아무런 탈 없이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배도 135척이 뒤따르게 하였습니다!”

“잘 했소! 그런데 그래도 뭔가 좀 모자라는 것 같은데……?”

“그래서 무사나 백성이 통신사 일행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미리 법을 만들어 지키도록 준비했습니다!”

“옳거니, 그러면 되겠네! 그럼 통신사가 오기 두 달 전부터 시행할 법을 만들고, 곳곳에 안내판을 세워 모든 백성이 알도록 하시오!”


통신사를 맞이한다고 지방에서는 법까지 새로 만들어. 대체 통신사가 일본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기에 법까지 만드는 걸까. 그리고 대체 그 법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려면 그 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될 거야. 잘 들어봐, 어떤 내용인지.


첫째, 통신사 배가 지나갈 때는 그 배를 먼저 지나가도록 할 것! 둘째, 통신사의 풍습이 달라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말 것! 셋째, 바다에서 보이는 집과 길은 깨끗이 청소를 해둘 것! 넷째, 통신사 구경을 금지하는데, 무엇보다 배가 육지에 닿을 때는 엄하게 금지한다! 다섯째, 통신사로 온 사람에게 붓과 책, 글씨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어때, 대단하지? 내용을 살펴보면 그 무엇보다 통신사가 우선이고, 통신사에 대한 편의 제공이 먼저야. 하하, 세상에나 조공을 바치러 간 사절단에게 이처럼 융숭하게 법까지 만들어서 맞이하는 나라가 있을까? 좀 더 살펴볼게.


그럼 통신사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곳까지 도달하면 어떻게 움직였을까?


“이거 큰일 났습니다, 가로님! 통신사가 묵을 방을 멋지게 꾸밀 병풍이 없사옵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이웃 마을에 연락해 금은으로 수놓은 병풍을 가져오라고 해라! 그리고 몇백 명이 넘는 사람을 다 재우려면 산노세처럼 작은 항구로는 벅찰 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마땅히 백성의 집을 빌려야 할 것입니다. 통신사가 오기 전 산노세 백성을 산으로 속히 이동시키고, 그 집에다 통신사 일행이 묵도록 하면 될 겁니다. 우리 번의 명예가 달린 일인데 하룻밤 정도는 참고 견뎌야지요!”

“음, 일리가 있는 말이야. 그런데 통신사가 도착할 때쯤이면 날이 어두워지는데 밤바다를 배가 오가는 것이 괜찮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통신사를 태운 배가 바다를 지날 때 대낮처럼 훤히 밝힐 만반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등불에 불붙이기, 봉화로 통신사가 오는 것을 알리기, 배 100여 척으로 히로시마와 미하라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는 연습까지 싹 다 마쳤습니다. 통신사 삼사가 묵을 숙소와 관청도 무사가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고 있으니 안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할 것입니다!”

“알겠네. 만에 하나라도 통신사의 신변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프니 각별하게 신경 써야 할 것이네!”


위 대화는 에도시대 다이묘의 가신 중 최고 지위에 있던 관직인 가로가 얼마나 통신사 접대에 신경 썼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거야. 심지어 통신사가 머물 동안 자기 백성조차 살던 집에서 내쫓을 정도지.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뒤 통신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거야.


이윽고 통신사가 탄 배가 나타났어. 히로시마 번에서는 축포를 쏘고, 가로를 비롯한 무사가 선착장까지 나와 온갖 예의를 다해 통신사를 맞이했지. 사신이 탄 가마는 일본 사람이 매었으며, 숙소까지 이르는 길에는 유럽에서 들여온 진홍색 양탄자까지 깔았어. 날이 어두울 때 통신사가 도착하므로 가는 길마다 등불을 환하게 밝혀 사신이 헛걸음을 내딛는 일이 없도록 했음은 물론이야! 상상만 해도 대단하지? 이런 데도 조공을 바치러 간 사절단일까? 참고로 중국으로 간 연행사는 중국 대상 행렬이 지나가면 그 행렬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 조공사절단의 설움이라 할 수 있지. 근데, 일본으로 간 통신사는 보다시피 전혀 다르잖아!


이번엔 통신사가 교토에서 머물 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1748년 사행을 살펴볼게.


“통신사가 세토내해를 곧 통과할 거란 말이지? 그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저마다 좋은 생각을 말해보도록 하시오!”

“먼저 법규를 만들어 통신사를 맞이할 기본 방침부터 세우는 게 좋겠습니다! 그 법규를 모든 백성이 지키고 따르도록 하면 통신사 방문에 불편함이 덜할 겁니다.”

“아무래도 그게 좋겠소! 통신사가 우리 교토에서 며칠 동안 묵지 않소? 그동안에 반드시 바깥나들이를 할 텐데 그때는 어떤 음식을 대접하는 게 좋겠소?”

“그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교토에 사는 일왕이 바깥나들이를 갈 때 먹는 요리를 그대로 바치면 됩니다. 그 정도라면 사신도 퍽 만족할 겁니다!”


일왕 즉, 일본 천왕이 먹는 요리를 그대로 통신사에게 접대한다는 것도 우습지 않아? 조공사절단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환대니까 말이야. 게다가 교토에서는 통신사가 지날 때 다음과 같은 법규를 만들어 모든 백성이 지키도록 했어. 앞서 본 산노세보다 더 구체적이니 몇 가지를 더 살펴볼 거야.


첫째, 통신사가 지나는 길에 있는 건물은 대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길을 마주하는 창에다 발을 쳐서 밖이 보이지 않도록 한다. 통신사가 지나가기 사흘 전까지 끝내야 한다.

둘째, 동서쪽 다리 끝에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셋째, 통신사가 지나는 날은 배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아야 한다.

넷째, 통신사가 지나갈 때는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그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다니지 못하도록 길 양쪽으로 표시를 세워야 한다. 만약, 그때 거리를 오가며 통신사 행렬을 방해하는 자는 벌을 내려야 한다.

다섯째, 네거리나 나무 아래, 울타리 사이에서 마을 사람이 한 발짝 물러서서 구경하는 것은 좋으나, 예의 없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가게 앞이나 2층에서 구경할 때는 예의를 갖추고, 큰 소리를 내거나, 웃거나, 손가락질해서는 안 되며, 조용히 구경해야 한다. 안쪽에서는 주렴으로 가리지 않아도 좋으나, 남녀가 섞여서 구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 2층은 주렴으로 가리고 구경해야 한다.


이 정도면 국빈급 대우지? 사실 교토에서는 이보다 약 37년 전인 1711년에 통신사가 찾았을 때도 한바탕 난리를 쳤어. 오래된 동네에 있던 낡은 집을 싹 다 헐어야 했거든. 아울러 중요한 건물도 새로 칠하고, 청소까지 말끔히 다 마쳤지. 그러니 교토에서도 통신사 방문에 여간 정성을 쏟은 게 아님을 알 수 있어.


뭐, 이쯤만 해도 통신사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간 사절단이라는 말은 더 따져볼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는 걸 느낄 거야. 그래도 좀 아쉽다고? 그럼 또 다른 보기를 들어볼까.


“통신사가 일본 땅을 오갈 때 청도 깃발을 들고 행진하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선생님,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생각해 보라! 청도 깃발이란 황제나 왕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이 길을 나설 때 앞서가는 깃발 아니냐? 다시 말해 이 말은 청소도 깨끗이 하란 뜻도 있지만, 사람이나 짐승이 행차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미리 치워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통신사가 일본 에도를 오갈 때 늘 청도 깃발을 앞장세우고 오가지 않느냐 말이다. 이건 조선이 학문에 어두운 우리 일본의 약점을 헤집고 들어와 우리 일본을 비웃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말을 한 아라이 하쿠세키(1657~1725)는 통신사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온 사절단이라 주장하는 학자들이 우러러 받드는 사람이야. 하쿠세키는 일본의 정치가이자 역사학자로 18세기 초 도쿠가와 바쿠후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지. 도쿠가와 이에노부(1622~1712)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구(1709~1716) 쇼군 때 일본의 주요정책을 세운 사람이야. 무엇보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기강이 차츰 무너지고 관료 제도의 나쁜 점이 드러나자 이를 바꾸려고 무지 애쓴 인물이기도 해. 통신사 접대와 관련해서도 개혁안을 내놓아 조선과 외교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어. 나중에 살펴볼 ‘빙례개혁’을 밀어붙인 장본인이지. 그런 하쿠세키 눈에는 통신사 행렬이 눈에 가시야. 그래서 문제 삼았거든. 청도 깃발을 휘날리며 일본 땅을 오가는 통신사 행렬이 하쿠세키로서는 내내 못마땅했어. 왜냐하면, 청도 깃발을 그리도 당당히 내세우면 일본의 처지에서 볼 때 통신사가 마치 일본보다 높은 나라의 사신처럼 비치잖아! 그래서 하쿠세키는 청도기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 애쓴 거야. 하지만 하쿠세키의 이런 바람과 달리 통신사는 단 한 차례도 청도 깃발을 내린 적이 없어!


생각하기)


중국으로 간 연행사와는 비교가 될 만큼 일본으로 간 통신사는 엄청난 대접을 받았지요. 그런데도 일본에는 통신사가 연행사처럼 조공사절단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여럿 있어요. 그러면서 그 증거로 여러 가지 사료를 내세우기도 해요. 이처럼 일본은 과거부터 어떤 외교 문제가 쟁점화되면 그에 관하여 연구를 많이 해서 자기 나라에 유리한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는 능력이 무척 뛰어났어요. 그건 오늘날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일본의 자세와 태도는 독도 문제에 이르면 극에 달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비롯된 일본의 외교적 자세와 태도에 맞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가장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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