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사건사고 1-5
5. 사행선이 불에 타다니?
1748년 사행 때야. 통신사를 태운 배가 2월 16일 쓰시마 악포란 곳으로 들어갔어. 통신사 배는 대체로 통신사의 세 사신인 정사, 부사, 종사관이 각각 배 한 척씩에 올라타고, 그를 따르는 예물선으로 구성돼. 그러니 보통 사행선은 6척 남짓한 거지. 하여튼, 통신사 배가 악포에 머물던 2월 21일 새벽, 그만 부사가 머물던 배가 불길에 휩싸인 거야. 그런데 좀 의아한 일이 있어. 통신사가 일본을 다녀온 뒤 사신은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적어 조정에 보고해야 하거든. 그런 종류의 글을 ‘사행록’이라 해. 하지만 희한하게도 통신사 사신이 적은 사행록에는 화재가 일어난 까닭을 써놓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통신사 배가 불에 탄 것을 알 수 있을까? 그건 쓰시마에서 기록한 자료에 있기 때문이야. 그것을 보면 통신사의 배가 불에 탄 까닭을 그나마 자세히 적어 놓았거든.
“우리가 보낸 술을 마시고 조선의 하관이 취했을 때, 촛불이 배 안의 도롱이로 옮겨붙어 부사가 탄 배가 홀라당 다 타버렸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게. 통신사절단은 부산에서 여러 날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일본으로 향하는 뱃길에 나섰어. 혹시라도 바람이 심하게 불지는 않을까, 행여 배가 뒤집히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치면서 나선 뱃길이야. 하지만 바다 신이 굽어살피신 덕에 다행스럽게도 쓰시마까지는 아무런 탈 없이 뱃길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어. 쓰시마에 닿으니 쓰시마에서는 험한 바닷길을 헤쳐 오느라 애썼다며 맛나게 빚은 술과 입에 쩍쩍 달라붙는 안주를 많이 보내 왔지. 술과 음식은 신분이 높은 사신은 물론이고, 가장 낮은 신분인 하관 즉, 풍악수나 뱃사공에게도 나눠 준 거야. 그러니 배꾼으로선 모처럼 긴장을 풀고 실컷 먹고 마실 수 있었나 봐.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그러다 술에 거나하게 취하게 된 거고. 그런 상태에서 촛불을 다루다 그만 짚으로 된 도롱이에 불이 붙고, 불어오는 밤바람을 타고 배 전체로 불이 옮겨붙었을 거야.
하지만 암만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사신이 타고 간 배가 홀라당 타버렸다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잖아! 힘들게 바닷길을 건넜다 하여 다음 날 일정도 있을 것이고, 국서 전달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마친 것도 아니잖아. 심지어 조선을 떠나 이제 막 사행을 시작할 참인데 말이야. 뭔가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 않아? 그런데 실제로 이 사건에는 살짝 의심쩍은 게 있거든. 자, 아래 이야기를 듣고 잘 생각해 봐.
“지난 사행 때 통신사 사신 가운데 가장 높은 사신인 정사가 사행을 잘 이끌지 못해 무관이 제멋대로 움직였고, ‘일부러 부사가 탄 배에다 불을 질러 조정을 속였다.’는 사람도 있다.”
이 글은 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통신사를 비판한 말 가운데 하나야. 이에 따르면 사행을 이끈 정사 홍계희(1703~1771)가 사절단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음을 알 수 있어. 또, 아랫사람 또한 윗사람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았음이 드러나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만약, 위에 소개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엄연한 범죄행위잖아. 그렇다면 마땅히 배에 불을 지른 범인을 찾아내 엄벌하여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우리 사신의 기록에는 사행선이 불에 탄 이유가 기록되지 않은 걸까? 결국, 애꿎은 사람만 죽고, 재산만 피해 본 거잖아. 아무튼, 의문은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거든. 다음 말도 마찬가지야.
“일본 뱃사람은 흐트러짐 없이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 조선의 수행원은 대체로 명령을 잘 따르지 않았다.”
이 말은 당시 통신사절단으로 다녀온 종사관 조명채(1700~1764)가 한 말이야. 적어도 이런 대목을 살펴보면 사행선이 불에 탄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통신사의 기강에 문제가 있음은 틀림없어.
그렇다면 그 당시에 조선 사람과 일본 사람 사이에 어떤 기강의 차이가 있기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걸까? 그걸 한 번 살펴봐야겠지?
“모든 관원과 백성, 뱃사람은 잘 들어라! 만약, 조선에서 온 통신사를 맞이할 때 한 점 흐트러짐이 있다면 그 누구를 가리지 않고 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통신사가 오면 쥐 죽은 듯 조용히 해서 통신사가 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하라! 걸음을 걸을 때도 살금살금 걸어 통신사가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 이 점 명심하고 명심해 애꿎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
어때? 섬뜩할 만큼 엄한 명령이지? 어느 쪽 말일까? 그렇지. 일본 쪽에서 조선 통신사를 맞이할 때 내린 행동지침이야. 명령만 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명령을 어기면 엄하게 처분했어. 그러니 일본인은 상부의 지시를 잘 따르고, 명령에 잘 복종한 거야. 하지만 조선은 좀 달랐어. 조선 수행원은 일본에서 볼 때 손님 처지인 데다 설령, 잘못을 했더라도 몇 대 맞으면 그만이거든. 그러니 조선 수행원과 일본 수행원 사이에는 기강이 무척 달랐던 거야. 규율이 엄격했던 일본과 규율이 느슨했던 조선의 차이지.
물론, 단순히 그것만 비교해서는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른지를 판가름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사람은 때에 따라선 어느 정도 규율을 잘 지킬 때 행복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선 어느 정도 자유로울 때 능력을 더 잘 발휘하기도 하니 말이야. 그러니 규율의 엄한 정도를 따져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지.
다만, 여기서 규율을 생각해 보자는 것은 규율이 차이를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으로 삼자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사행선에 불이 난 까닭 중 하나로 규율도 포함될 수 있을까, 없을까를 생각해 보자는 거야. 규율이 엄하면 기강도 엄할 것이고, 그러면 아무래도 처음부터 술에 취해서 행동하는 일은 없을 것 아냐? 그런 걸 그냥 넘어가지 말고 한번 짚어보자는 거지.
또, 당시 조선의 근무환경도 무시할 순 없어. 요즘도 사업체에 소속된 직장인의 경우 임금이나 근무환경에 아주 민감하잖아. 그건 그때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당시 통신사 하관에 대한 처우와 관리는 어땠는지도 알아보면 좋겠지? 사실, 일본으로 떠나는 통신사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정사, 부사, 종사관도 일본으로 사행하는 것을 달가워하진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일단 다녀오면 그 대접은 나쁘지 않았어. 사행 중에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사행을 다녀온 뒤 고생한 만큼 그 대가를 충분히 받았거든. 그렇다면 지위가 낮은 사공은 어떨까? 그들도 마찬가지였어. 사행을 마치면 통신사 삼 사가 나눠 준 재물, 일본으로부터 받은 재물 등을 합쳐 수익이 짭짤했다고 전해져. 정사와 부사, 종사관 등은 자기가 가진 재물을 대개 사행을 마칠 때 아랫사람에게 죄다 나눠줬거든. 또한, 일본 현지에서도 대접이 융숭했으니 사실 임금을 포함한 근무환경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짐작돼.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안 가지? 통신사 사행에서 왜 규율이 잡히지 않았을까? 그것이 또 하나의 의문점으로 남는 거지.
그 외, 사행을 떠날 당시 분위기는 어땠는지, 대한해협을 건너 쓰시마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도 따져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어. 그러나 그런 점까지 굳이 짚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행 시작부터 배에 불이 났다는 것은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지?
아울러 그렇게 중요한 배가 순식간에 홀라당 타버렸다면 ‘그 불을 끄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불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졌는지?’ 따위를 낱낱이 따지고, 뚜렷이 밝혀야 하잖아? 그런데 사행이 시작되자마자 일어난 사건이라 그런지, 정사나 부사가 사행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탓이라 그런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게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의문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밝히지 못했어. 사실 불난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야.
자, 안타까움은 이쯤에서 덮어두고 다시 불에 탄 사행선으로 돌아가 볼까.
그나저나, 부사 배에는 사람도 많이 탔을 것이고, 일본 쇼군에게 갖다 줄 예단도 제법 많았을 텐데 그건 다 어떻게 됐을까?
“일꾼 셋이 불에 타 죽고, 화상을 입은 사람도 열이 넘습니다! 그리고 인삼 72근, 하얀 무명 20필, 부용향 310매가 다 타버렸습니다!”
거봐. 공연히 죄 없는 사람만 목숨을 잃거나 화상을 입었어. 재산상 피해도 어마어마하고. 이런 보고를 들은 통신사 세 사신은 앞이 캄캄해. 하지만 뭐 어쩔 수 있어? 정신을 차린 사신은 부랴부랴 조정에 연락해 도움을 청해. 그러자 이번에는 조선 조정에 비상이 걸렸어.
“대감! 통신사 사신으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는데, 부사가 탄 사행선이 불에 타 버려 사람도 여럿 죽고 예물도 다 잃었다 합니다. 당장 쇼군에게 보낼 예단이 문제라 합니다. 무엇보다 인삼이 가장 큰 골칫거리입니다!”
“뭐요, 그게 사실이오? 어허, 이런 낭패가 있나. 그런데 인삼이라면 호조가 관리하니 그쪽에서 잘 알 것 아니오? 그래 인삼이 어느 정도나 남아 있소?”
“안타깝게도 호조에 남은 인삼이라곤 겨우 10근뿐입니다. 심마니를 시켜 인삼을 캐더라도 지금은 인삼을 캐는 철이 아니어서 그것도 어렵습니다!”
“어허, 이를 어쩐다. 할 수 없지. 그럼 대궐에서 쓰려던 인삼이라도 보냅시다!”
“대감! 그건 아니 됩니다. 어찌 전하가 쓸 인삼을 함부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인삼을 캐는 철이 아니라 하더라도 돈만 제대로 쳐주면 70근 정도는 모을 수 있습니다. 은자 1만 5천쯤 필요합니다만…….”
“뭣이라, 은자 1만 5천? 어허, 이거 조정의 재정이 바닥나겠구먼, 바닥나겠어!”
결국, 조정에서는 일본에 추가로 보낼 예단이며, 인력을 서둘러 마련해 보냈어. 그것으로 통신사 사행은 다시 이어지지만 아무래도 씁쓸한 뒷맛이 남지.
사행선이 불타버린 이 사건은 세월이 흐르며 점점 기억에서 사라졌지.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새삼 떠올릴 필요가 있어. 왜냐하면, 지금이라도 그때 일을 교훈 삼아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거든! 첫째, 실수로 그랬건 일부러 그랬건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까닭이나 배경은 무엇인지 뚜렷이 밝히는 것을 배워야 해. 둘째,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피해를 줄이려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일을 처리했는지 따위를 바르게 배워야겠어. 셋째, 어떤 일에 대한 뒤처리를 다 끝낸 뒤 그 일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가 분명히 지는 것도 배워야 할 거야. 이건 마땅히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책임이 무겁다 할 수 있겠지!
이런 기준에 따라 다시 통신사 일행이 탄 배가 있는 그 당시로 되돌아가 몇 가지만 더 궁금한 점, 토론할 점을 생각해 볼 거야.
첫째, 불이 난 까닭은 밤늦도록 술 마시다가 촛불이건, 담뱃불이건 누군가의 실수로 불이 붙었을 거 아냐?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가 일부러 불을 지르지 않았다면 사람도 여럿 있는데 어찌하여 그토록 쉽게 불이 붙을 수 있었을까?
둘째, 일본에서 통신사를 맞이할 때 일꾼까지도 그 숙소가 마련돼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한밤에, 그것도 배 안에 배를 지키는 사람 말고 그리도 많은 사람이 같이 있었을까? 게다가 일본 사람도 한데 섞여 있었다는데?
셋째, 실제로 쓰시마 사람은 우리랑 달리 불이 난 과정을 훤히 알고 있잖아! 그렇다면 일본 사람은 왜 불이 나는 걸 막지 못했을까? 생각할수록 불이 일어난 과정이나 까닭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지 않니?
넷째, 당시 그 누구도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선뜻 나선 이가 없다는 것도 문제야. 정사나 부사, 종사관 그 누구도 자기 책임이라며 썩 나서지 않았거든.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고민해 보면 조선 통신사의 미스터리인 사행선 화재 사건을 좀 더 소상히 밝힐 수 있을 거야.
생각하기)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건, 사고가 벌어지고 있어요. 그 가운데 상당수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인재였음이 드러났지요. 소중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계속 발생하지 않으려면 무릇 그 사건, 사고를 예방, 관리, 수습할 책임자가 있어야 해요. 당연히 그 책임자는 지난 역사를 통해 뭔가를 배워야 할 거고요. 어떤 걸 배워야 할까요? 발뺌하는 걸 배울까요, 책임지는 걸 배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