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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찌니 Oct 07. 2024

웃음이 나면 웃는 거지

꽃을 든 남자, 오영

'킁킁 냄새도 안 나고, 옷도 깔끔하고.

신발도 안 꺾어 신었고  심지어 조금 잘생겨 보이는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심장이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

심장이 안 좋은 건가 놀라 엄마에게 달려가 얘기했더니 깔깔 웃으신다. 요즘 엄마가 꽤 자주 웃으신다. 엄마가 웃는 건 기분이 좋긴 한데 그래도 아들이 심장병이 생긴 것 같다는데  이렇게 웃는 것은 너무하다 싶다.

엄만 밥을 많이 먹는 덩치 큰 아들이 이제 미우신가.

속상한 마음에 방에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엄마가 부르신다.

"언제 어디서 만나기로 했니? 깔끔하고 입고 나갈 옷 한 벌 사러 갈까?"라는 말에 역시 엄마는 아들을 미워하는 게 아니었구나 안심되니  왠지 모르게 들뜨는 기분에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양치를 하며 흥얼거리기도 하고 세수를 하며 거울을 보다 괜히 잘생겨 보이기도 하고 뭘 입지 고민했었는데 그 맘을 알아주는 엄마가 있어 다행이다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이 내 편인 것 같은 날이다.

기분 탓인지 유난히 오늘은 조금 더 잘 생겨 보인다. 그동안정신이 좀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눈썹도 진하고 눈도 크고 키도 크고 피부도 흰 게 꼭 티비에 나오는 사람 같기도 하고 꽤 멋지다. 엄마가 사준 베이지색바지는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입기 싫었는데 입고 보니 위에 입은 니트와 잘 어울려 좀 멋진 거 같기도 하다

잠시 티비에서 봤던 멋진 어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 꽃..!!"

항상 티비에서 남자가 여자를 만나러 갈 땐 꽃을 들고 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지금  모습에 꽃을 들고 있으면 꽤  멋있어 보일 것 같다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는 찰나 엄마가 욕실에 들어온다.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눈빛이 갑자기 싸늘해진다.

'내가 뭐 잘못했나?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었나?'

오만생각이 들며 쭈뼛거리고 있으니 엄마가 분무기와 드라이기를 들고 왔다. 한껏 신경 써서 예쁘게 가르마를 타고 엄마처럼 스프레이도 칙 뿌려둔 머리에 물을 듬뿍 뿌려버린다.  '엥,  겨우 올백으로 멋지게 가르마 타 뒀는데!!'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물을 뿌려버려 지금은 다시 머리를 손질해야 했다. 다시 아까처럼 멋지게 할 자신이 없어 입이 댓 발이나 나온 채로 머리를 맡기고 앉았다.

엄마는 천천히 머리를 말리고는 살짝 이마가 보이게 옆으로 빗으며 살짝 스프레이를 뿌리셨다. 그 모습이 꽤 전문가같이 보여 왠지 안심이 됐다. 두어 번 칙 소리가 더 들리고 드라이로 살짝 바람을 쐬어주곤 끝났다며 등을 살짝 톡 치는 통에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보니 진짜 티비나오는 드라마 주인공 같은 모습에 너무 맘에 들어 이대로 맨날맨날 다니고 싶었다.  거울을 보고 또 봐도 너무 잘생겼다.

그렇게 한참을 거울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다되어간다.


아직은 혼자 버스 타고 멀리 나가는 것이 무서워 엄마와 같이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 기로하고 약속 장소로 가는 길, 눈앞에 꽃집이 보인다.

지금 모습엔 꽃이 너무너무 잘 어울릴게 틀림없다.

빨간 장미가 너무 예쁘게 포장된 꽃다발로 골라 들었다.

엄마가 준 용돈의 반이 꽃다발에 들어간 것 같지만 지금은 안 살 수가 없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꼭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때 꽃을 선물했으니까. 혼자 한창 기분 좋은 상상을 하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친구라는 대목에서 갑자기  긴장감이 올라온다.


도착.

심장이 다시 한번 덜컥 내려앉는다.

누군지 알 것 같다. 모르는 얼굴인데 더 이상 커질 수 없게 커다랗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는, 단발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하얀 얼굴을 가진 여자를 본 순간 심장이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은 듯 아팠다.

 

'이 사람이구나!!'


놀란 눈이 이내 눈물로 가득 찬다.

"그거.. 나 주려고 산 거야?" 울먹거리며 내 손에 담긴 꽃다발을 가리키며 입을 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끄덕이며 연신 꼼지락 거리며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 방금까지 치솟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콩닥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계속 서있을 수는 없어 가까스로 입을 뗐다.

"여기 앉아도..  돼요?"

여자의 얼굴에 순간 '아!' 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요. 앉으세요. 오영 씨, 난 민영이라고 해요."


조금은 진정된 표정과 목소리에 좀 전과는 다른 긴장감이 올라온다.


"안녕하세요. 전 오영입니다 "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 첫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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