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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May 20. 2022

네다리로 달리는 너와 두다리로 걷는 나

닮다


오월의 아침 바람이 아까웠다.

논의 물을 말리고 고추모종을 넘어뜨리는 이 바람은 농부들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는 바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바람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람은 한 여름 태풍이 일기 전,

비 없이 휘몰아치기만 하는 바람.

간판도 들썩이게 하고 도로에 버려진 쓰레기 뭉치도 날려버리는 바람.

오늘 아침 바람을 몸에 담기 위해 5시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고 30분에 집을 나섰다.

아, 이 바람.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날 정처없이 만든다.

바람은 나무도 어루만지고 풀잎과 풀꽃들과는 짧은 포옹을 열렬하게 나눈다.

이 바람이 불면 어디든 걸어야 할 것만 같아서 난 걷는다. 이른 새벽이라도.

바람맞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줄에 묶여 한동안 탈출하지 못 했던 진돌이가(우리집 개) 줄을 빼고 사라졌다.

너도 이 바람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키울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는 진돌이다.

키우자니 사납고 힘도 세서 자주 줄을 끊고 탈주를 한다. 혹시나 동네 사람에게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까 전전긍긍, 동네 사람들 말대로 팔자니 팔자마자 죽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

그런데 이제 보니 진돌이가 나를 닮았다.

바람을 느끼는 심장을 가졌다니.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기분을 알고 있다니.

오늘만이라도 넌 네 다리로 자유롭게 달려보고 싶었겠지.

줄을 끊고서라도.

바람이 불면 내 안에 어떤 줄이 끊어지길래 나도 걷고 싶은 건지 알고 싶다.

너처럼 나를 묶고 있는 줄을.     

나는 오늘 진돌이와 내가 한 심장으로 묶인 생명체라는 괄호를 진하게 열고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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