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아시스 Oct 26. 2022

식물 키우기

재주보다 애정으로 하고 싶은 일

비가 후두득 떨어진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빗물은 질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식물들에게 영양가가 그득한 식사가 될 수 있다고. 특히 번개가 치는 날의 빗물은 보양식이라고나 할까, 식물들에게 아주 좋은 원소들을 품고 있다고 말이다.

비는 주르륵인데 그저 바라보고만 있자니 이 빗물이 아깝다는 생각이 난생 처음으로 든다. 갑자기 기르고 있는 화분들에게 이 빗물을 흠뻑 마시도록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와 비를 맞아가며 화분들을 마당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넉넉할 때 저축하는 마음이라고 할까 빗물도 받았다.

난 손으로 하는 걸 영 못 하는 사람이기에 손이 닿는 일은 안 하려는 본능이 있었다. 그림, 자수, 세상 모든 만들기, 음식 채썰기, 식물 키우기, 등등

손으로 하는 일을 꺼려한다면 할 만한 남은 일은 뭘까? ^^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블라우스 만들기 실습이 한창인데 가정 선생님은 "이렇게 만들면 안 되요." 하시고 샘플로 내 블라우스를 들고 다니셨다. 그 불라우스의 2/3도 다 친구들이 도와주고 이웃 아주머니가 도와준 결과물이었다.

난 도통 옷감 재단을 이해할 수 없었고 바느질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참 이상했다. 두 손으로 꼬물꼬물 하면 무언가 만들어질 법한 일이 내게는 완벽하게 못 할 수도 있고 세상 꼴찌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느낌은 또 난생 처음이었다.

그 후로 딱 한번, 십자수가 유행일 때 열쇠고리에 다시 도전 했다. 나름 큰 맘을 먹었다. 하루 종일 앉아 십자수를 놓는데, 그저 실에 꿰어진 바늘을 앞뒤로 찔러넣고 빼내기만 하고 있었는데, 참 이상도 하지? 아침에 시작해서 고개를 드니 해가 저물며 어둑컴컴해지고 있었다. 휴~~ 고된 숨이 토해졌다. 나에게는 바느질이 재미가 제로에 가까운 중노동일 뿐이었다.

그 뒤로는 다 접었다. 손끝 재주가 필요한 일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마흔이 넘으니 식물이 하나둘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하나하나 분양받아 작게 키우기 시작한 식물들이 나한송, 몬스테라, 안스리움, 홀리아 페페로미아, 스킨답서스, 빅토리아, 워터 코인, 크라슐라속, 개운죽이다. 물론 이 사이 율마, 장미 허브, 라벤더를 비롯해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수많은 화분들을 죽였다.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다육이들도 죽어 나갔다.

어떤 이들은 "그냥 놔두고 키워요!" 란다. 그래도 싱그럽게 자라길래 나도 그냥 놔두었더니 시들해서 죽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식물을 키우고 싶은 꿈은 커져만 간다. 식물을 위해서 온실도 상상해 본다. 햇볕 좋고 바람이 잘 통하고 빗물을 흠뻑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하나하나 정성껏 잘 키워주고 싶은 마음, 손끝 재주보다 애정으로 키우고 싶은, 노년의 공간으로 가꾸고 싶은 마음.

이제 나이가 중반에 접어드니 재주로 하는 일보다 느려도 애정으로 정성껏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보다. 그 첫 시도가 식물 집사다.

애정을 품고 무성하게 길러내고 싶은 내 인생에 초록 괄호를 열고 닫아본다.   

이전 16화 오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