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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Sep 06. 2022

그림의 번지수

예술은 인생과 같은 거리, 하지만 다른 번지에 산다

비록 네번뿐이지만 격주로 미술 수업을 듣고 있다.

스케치 수업도 아니고 미술사도 아니고 명화에 대한 이해도 아니고 그럼?

왜 이 그림이 내 눈에 들어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수업이다.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지만 바흐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 하고 공부한 세대로서

고흐와 피카소가 화가인건 알지만 그들의 그림을 3분도 감상하지 못한 공부를 한 세대로서

이 수업은 특별했다.

북유럽 화가의 그림들을 좋아하는 강사님은 우리에게 낯선 그림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질문지를 내미신다.

질문에는 '내가 왜 이 그림에 끌렸을까?' 를 알아갈 수 있는 질문 몇 개와 만나게 된다. 지도의 이정표처럼 꽂힌다.

내가 고른 그림에 대한 답을 쓰다보니 나는 커다랗고 추상적이고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정보가 캐치되었다.

하나의 그림으로만 답을 했을 뿐인데 삶의 특별한 순간을 꿈꾸는 나의 몽상가 기질이 드러났다고 할까.

일단 그림 앞에서 모든 편견을 버릴 수 있어서 좋았다.

3초간 그림 앞에 머무르며 "음, 좋군."  하고 지나치면서도 허한 느낌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심오한 화가를 이해하지 못 해도 좋다.

이제는 내 차례, 내가 질문을 던지면 되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세요? 지금 기분은 어떠신가요?"

"난 왜 이 풍경이 끌리는 걸까요?"

"나도 이런 상황이었던 적이 있었어요!"

하고 대화를 나눌 상대를 무한히 만들 수 있었다.

필요한 건 여유, 한 작품을 충분히 들여다 볼 여유를 갖는 훈련이었다.

속도를 내는 이 세계는 자꾸 순간마저도 놓치게 만든다.

여러 모습의 나와도 만나게 되었다.

나와 소원했던 나,

여러 모습중에서도 한 가지 모습만 집착적으로 표현되며 살고 있는 나.

나도 모르는 흐릿하고 낯선 실루엣들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라니,

낯설다라는 단어에는 정말 많은 느낌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건 거창하지 않아도 되었고 특별한 미의식의 단계가 아니어도 되었고 카톡 이모티콘을 고르는 시간만큼만이라도 들여다보면 되었다.

이제야 미술의 문턱이 조금 낮아진 기분이 든다.

미술관에 갈 가볍고 흥미로운 마음도 출렁인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 등장했던 문장이 떠오른다.

예술은 인생과 같은 거리, 하지만 다른 번지에 산다. 예술은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해 주지만 예술 덕분에 인생을 살기가 실제로 더 쉬워지는 건 아니다. 예술은 인생만큼이나 단조롭다. 단지 다른 번지, 다른 장소에 놓여 있을 뿐이다.  

끌리는 그림을 보는 잠시, 중력에서 살짝 벗어나 유영을 한다.

난생 처음 미술 작품에 아름다운 괄호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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