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끝이 났다.
추앙, 환대란 고급진 단어들을 남겼다.
존재가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단어.
난 널 추앙해!
난 널 환대해!
불현듯 난 얼마나 가난한 말을 듣고 살았고 가난한 말을 쏟고 살았는지 알아졌다.
존재가 아닌 역할에 부여되는 말
씻어, 공부해, 차 빼라, 밥 먹어라, 지적, 지적....
빈곤한 말을 듣고 쏟고 사니 구씨처럼 사람이라는 존재가 1원짜리로 굴러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알코올중독자에게 술을 사 주며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이 72점은 되는데 10점 짜리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막 사는 여친을 축복해 줄 수 있을까?
난 사랑도 올바른 사랑이어야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나보다.
우아한 화병에 꽂히는 장미의 사랑이 아니어도 간장 종지에 담긴 목 부러진 장미의 사랑도 사랑인데, 몰랐다.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이 너무 협소했다.
알코올중독자는 술을 끊게 해야 하고 막 사는 애는 지적질 좀 해서 선도해야 하고.
그런데 이상하게 망가진 상태 그 모습으로 받아들여진 구씨와 현아는 스스로 일어설 힘을 회복한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사랑을 받자 스스로 힘을 채워 일어섰다.
그 사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이 그의 인생을 손대려 하는지.
사람이 사람에게 해 주어야 할 사명은 환대하고 추앙할 것,
그럼 사람은 스스로의 본모습을 찾고 스스로 길을 내며 걸어간다.
우린 이렇게 살라고 창조되어졌을까.
사람에 대한 믿음.
작가님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따스했다.
오늘 중요한 일은 말이다.
도시 속의 어떤 조직에 꽂아있는 부속품에게 하는 딱딱한 소리가 아니라
존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말랑말랑한 말.
있는 모습 그대로 날 받아들이고 널 받아들이고 나를 초대하고 너를 초대하는 오늘의 괄호를 열고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