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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May 24. 2022

날 살아가게 하는 삼박자

쌍스러울 수도 성스러울 수도


물내림 핸들을 밑으로 누른다.

물이 쏴아하고 쏟아진다.

하얗게 닫은 변기커버 밑으로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관으로 빨려들어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더러움이 밀려내려가고 다시 깨끗해졌을 것이다.

성스러운 동작 1분이다.

1분이 없으면 내 더러움은 사라지지 않고 비워지지 않고 그럼 채울 수도 없다.

'성스럽다.'

쌍스러울 수도 있고 성스러울 수 있다.

신은 내게 유전으로 성스러움도 주셨구나.

지켜야 하는 성스러운 기품도 주셨다.

속되고 싶지 않다.

늘 쌍스와 성스의 경계에 있는 순간.

나는 이런 인생을 살고 있다.

우주의 선물은 거대한 상자 하나가 아니다.

큰 선물함에 작은 선물함들이 보석처럼 빛을 내며 담겨 있다.

하루는 그런 의미.

신은 정말 소중한 선물을 인간에게 주셨다.

성스러운 유전자, 상상하는 대로 실현되는 내적인 힘, 보석함이 열리는 하루.

삼박자. 쿵짝짝이다.

그런데 왜 누리지 못하고 사는 걸까.

신의 자녀들이 어쩌다 동물같은 욕망으로만 움직이게 되는 걸까.

쌍스와 성스의 경계선이 너무 밀려갔나.

그래도 인간에게 늘 가망성이 있는 건 누구나 신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근원을 찾고 싶은 갈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만 성인들만 성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을 죄인이라 규정하는 순간, 인간은 신성을 잃고 죄인으로 낙인찍힌 게 아닐까.

난 신의 딸로 부활하기 위해 깨끗한 물 한잔에 성스러움을 담아 1분간 마신다.

1분이면 된다.

성스러움을 부활시키기에 충분한 시간, 1분의 괄호를 성스럽게 열고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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