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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Sep 27. 2022

어씽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하는 맨 발, 맨 마음

"맨발 벗고 갑니다."

현덕 작가님의 동화도 생각이 난다.

영이가 맨발 벗고 여름을 만끽하며 동네를 도는 것 뿐인데 기동이는 어디 가냐며 영이를 자꾸 졸졸졸 따라다니는 그림책이다.

기동이가 따라다니다 못 참고 영이 앞에 서서 두 팔로 막아선다. 그러자 영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영이 입장에서는 맨발 벗고 세상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는 중인데 자기 앞 길을 계속해서 턱턱 막아서니 분이 날 수 밖에.

그러고 보니 영이는 벌써 어씽을 하고 있었던 주인공인 셈이다.

어씽이란? 맨발로 걷기.

몸 안의 체내 정전기가 땅으로 빠져나가고 땅이 지닌 자연전자가 우리 몸으로 흘러들어와 우리 몸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해 준다고 한다. 그리고 지구 고유 주파수와의 공명으로 깊은 행복감도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지구가 품은 생명체라는 전제가 가득한 단어이다.

몸이 아픈 지인이 어씽을 실천하면서 나에게도 '어씽'을 해보라며 권해서 궁금하던 차였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라.

어씽을 하고 싶어도 맨발로 걸을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힘이 든다.

영이는 벌써 100년전 아이다.

100년간 지구는 가속 폐달을 밟아 보드라운 흙대신 거칠고 폭력적인 소재로 바닥을 갈아엎는 중이다.

그런 내게 기회가 왔다.

여름 휴가차 온 바닷가.

이른 아침 친정 엄마와 딸과 함께 해변길을 나섰다.

친정 엄마는 발이 다치면 큰 일이라 운동화를 신은 채 나와 딸은 슬리퍼를 벗고 맨발인 채 걸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늦게까지 놀아서인지 우리 셋만 기다란 해변길을 걷고 있었다. 10km에 달하는 명사십리 길이다.

영원히 멈추지 않을 파도만이 기척을 내며 우리 곁에서 가까워지다 멀어지는 기척으로 이 아침을 가득 채웠다.

조개껍질이 널려있기도 해서 조심조심 걷다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소쿠리를 끼고 나온 마을 아줌마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땅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는다는 생각이 참 근사했고 나를 겸손하게 했다.

두 시간 동안 내 마음의 에너지 파동이 지구의 주파수 파동과 공명했을까?

커다란 동심원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만들어지면서 퍼져나갔을까?

지구가 만든 동심원과 어떤 지점에서 접점이 생겨났을까?

신발 하나를 벗는 것 뿐인데 마음 겹겹이 벗어지는 기분이다.

맨 발과 맨 마음.

현대의 장식물을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던 맨발 걷기,

무자극, 무과시, 무욕망인 자연인으로서의 나를 만나고 싶을 때 맨발이라는 괄호 하나 열고 닫아보는 일도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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