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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Sep 28. 2022

접촉의 발화점

코로나 경계선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벌써 좀 지난 일이다.

'지구적 재앙을 맞이한 인류'라는 제목으로 상영될 법한 영화같은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났다.

코로나는 기세가 꺾여서 치명률은 낮아졌지만 전파력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속도를 높이며 날아올랐다.

델타에 이은 오미크론 변종이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드디어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다.

함께 식사를 했던 동생네가 코로나에 걸린 걸 알고 병원에 검사하러 갔더니 아무 증상이 없었던 큰 딸부터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 뒤로 차례차례 한 사람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동시다발적으로 걸렸으면 좋았을 텐데 월요일에 걸린 큰 딸부터, 토요일에 확진 판정을 받은 나까지. 결국은 거의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막내 아들은 해열제 약이 듣지 않았다. 열이 39도를 넘어 40도까지 치솟았다.

아산 병원에 연락을 하고 서둘러 갔어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병원 안으로는 들어가지도 못 했고 병원 밖에 간이로 설치한 치료실에서 투명한 막 너머의 의사의 진료에 간단히 대답을 하자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와서 엉덩이에 해열제 주사만 놓아줬을 뿐이다.

너를 경계해야 하는 상황, 시절이다.

서로를 위해서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고, 말은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아야 했고, 손에는 비닐 장갑을 끼고 생활해야 했다.

손세정제를 수시로 바르며 더러움을 살균해야 했던 상황의 연속들, 경계선이 뚜렷하다 못해 너와 나 사이에는 까만 공간만 있을 뿐이었다.

여러색의 다양한 색이 섞인 갯벌의 까망이 아니라 온통 냉혹만 품고 있는 날카로운 물성의 까망이었다.

코로나에 걸리고 후유증까지 톡톡히 앓고 나서야 무서움을 알게 된 바이러스의 실체.

바이러스가 정말 무서운 건 목과 머리가 찢어지고 터질 것 같은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살아나서 회복되고 보니 너와 나를 갈라놓는 힘 때문이었다.

안을 수도, 나눠 먹을 수도,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이야기를 할 수도, 함께 앉아 협력해서 무언가를 완성해 내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저 나란히 있고 싶을 뿐인데 벽이 세워진 공간 하나에 뚝뚝 떨어져야 하다니. 가족까지도 나를 위협하는 존재처럼 느껴질 수 있다니.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은 싫어하는 사람을 꺼려하듯이 튕겨내며 지내야 했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우리 가족은 식탁에 모여 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마음껏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를 했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아이들 밥 위에 놓아 줄 수도 있었고 마신 물 컵의 남은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살과 살을 비비고 입에 입을 맞추고 가슴과 가슴을 맞대면서 손과 손을 잡으니 따뜻함이 두루두루 흘렀다. 살 맛이 났다.

이를 어째, 인간이란 접촉의 순간에 따뜻함의 발화점이 켜지고 마는 것을.

접촉의 발화점이 켜지는 아름다운 괄호의 순간이었다.

너와 내가 다시 나른해질 쯤에는 그 순간을 새록새록 떠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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