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국어 수업을 하는 중 3 쌍둥이 형제가 코스모스를 읽고 싶다고 했다.
국, 영, 수 학원을 빙빙 돌아도 늘 책을 읽는 기특한 형제, 그들과 함께 한달간 코스모스의 두터운 글을 독파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과생을 이과생으로 부르는 전형적인 문과생 기질의 사람, 사회의 원리는 이해가 돼도 과학의 법칙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한 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래서일까, 글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아서 읽어가기는 하는데 법칙이 나오고 과학자들의 이론과 발견이 소개될 때는 흥미와 놀라움이 반절, 이해 불가한 나머지 영역은 '패쓰' 하며 훑어 내려갔다.
"우주책을 읽는데 소란스러운 한낮은 적당한 시간이 아닌거 같아!"
나는 온갖 소음과 잡념으로 머릿속이 혼잡한 낮시간은 이 책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 새벽에 일어나 고요하게 이 책과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부터 밖은 캄캄하고 가족들은 아직 자고 있을 때 스탠드를 켜고 코스모스를 한장한장 읽어내려 갔다. 새벽 시간은 정말 특별하다. 뇌가 가장 총명해지는 시간이다. 문장들이 머릿속으로 빨려들어오는 것처럼 읽히는 마법의 시간이라는 걸 다시 경험했다.
그때부터다. 우주가 내 머릿속과 마음 속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한 건.
책에서 현실과 맞닿지 않은 무한의 숫자들이 연거푸 등장을 한다. 짐작도 상상도 안 되는 광대한 시간, 광활한 우주의 세상은 나를 중력장에서 벗어나게 하면서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불쑥 이동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경이로움'
창조론인지 진화론인지는 따지지 말고 책으로만 생각해 본다.
무한한 시간동안 진화가 거듭되면서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변이에 변이를 거듭해서 지금 모습에 다다른 나, 변이가 조금만 삐끗했어도 존재하지 않았을 나와 수많은 너희들.
그리고 어쩜, 우주의 먼지 한 톨도 안 될 우리들이 이 지점에서 딱 하고 마주친 건지,
광대한 우주로 보자면 개미와 비교하기에도 너무 작아져버릴 존재들이지만 예측도 할 수 없는 시간 연대기 동안 수많은 변종과 변이를 거쳐 이 시점에 짠 하고 모습을 갖추고 나타난 나와 너희들.
작은 내 안에 무한한 우주가 한가득 + 너에게도 우주가 한 가득 = 내 가슴은 터질 지경이었다.
개미가 태양을 품고 있는 형세라고나 할까.
이런 경이로운 아이러니를 봤나.
새벽에 일어나 코스모스를 읽으며 새롭게 확장된, 아니 스스로 '변이'를 일으키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던 거였다.
새벽에 책을 읽으며 '변이'가 거듭되는 아름다운 괄호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