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카톡방을 쓰는 지인들과 100일간 비유쓰기를 하기로 했다.
시초는 이대흠 시인의 시톡시 시집을 읽은 지인의 제안이었다.
창조성의 최고봉은 은유였고, 은유는 직유부터 가야한다는 논리는 우리를 매력적으로 휘어넘겼다.
왜 우리는 직유를 하고 싶고 은유를 하고 싶은 뚱딴지 같은 생각에 열광했나.
모두들 알아차리지는 못 했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낡고 질리다시피 한 실용성의 현실 세계에서 순간이라도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색다른 생각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낯설고 써보지 않았던 회로라 어렵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시어를 토요일로 했다고 하자. 토요일을 도대체 어떻게 틀어보고 비꼬아서 새롭게 본단 말인가!
그래도 빨간 색의 숫자 말고도 토요일에 대한 기발하고 발칙한 생각을 하고 싶은 마음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시집을 내는 시인들은 아니지만 하루로 배치되는 온갖 것들을 새롭게 변형해 보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대흠 시인은 하루에 50개씩 6개월을 하셨다고 했는데 20개를 하는데도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의 뉴련은 왜이리 뻔한 세계에 진한 실선을 그리고만 있는지, 점선이라도 엉뚱한 곳으로 연결시켜 보기가 이다지도 힘이 드는지, 내 참나.
1. 방학 중 맞이한 토요일처럼 김빠진 맥주
2. 잘게잘게 썬 김치처럼 볶아서 맛있게 요리하고 싶은 토요일
3. 햇빛에 널어놓은 토요일, 얼룩 지워진 티셔츠처럼 피로가 사라진다.
4. 약속 시간보다 빨리 나가서 기다리는 마음처럼 토요일
5.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처럼 토요일에 풍덩 빠져지내지
6. 젓가락이 푹 들어가는 삶은 감자처럼 알맞추 익은 토요일 낮
7. 매미소리만 가득한 파란 하늘처럼 홀로 있는 토요일
8. 퉁퉁 부어오른 종아리처럼 시간이 부어오른 토요일
9. 새 잎이 돋아난 수경 식물처럼 새 시간이 돋아나는 토요일
10. 시들어가는 불꽃처럼 꺼지는 토요일 밤
끄적끄적 해본다. 머리는 아프지만 새로운 토요일을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은 상큼해진다.
잠시 발을 뺄 뻔 했으나 이 글을 쓰면서 비유 실험에 깊숙이 담가보기로 한다.
하루를 구성하는 물성의 세계를 다른색 새 옷으로 입혀보는 기분이랄까,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새 옷을 입는 기분이 어떤지.
새록새록 하루의 배치를 바꾸어보고 디자인하는 비유의 괄호를 열고 닫아봐야지.
아름다운 괄호 하나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