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어떤 유투브에 꽂혔는지 모르겠지만 생일 선물로 도마뱀을 갖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생일까지는 아직 세달 정도가 남은 시점이었다.
"뱀이라니?"
"도마뱀이예요!"
"뱀이나 도마뱀이나?"
처음 들었을 때는 뒤로 나자빠질 수준의 발언이었다.
그러나 도마뱀을 꼭 키우겠다는 확신은 90%의 불가능한 상황에 개연성을 조금씩 만들어 갔다. 결정판은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이었다.
간추려 보자면 요지는 이렇다. 아들은 학교 와서 멍때리기를 즐겨하고 의욕이 없는 아이처럼 흥미가 없는 일에는 늦장을 부려 뒤쳐져 지적을 몇 번 받았다. 감정 질문지를 작성해 보니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을 키우는 편이 아들 정서에 좋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
생일을 앞두고 아들과 약속을 했다. 하루에 책 한권, 수학 한장을 풀면 스티커를 붙여서 달력을 채워보자. 그리고 스티커 별로 반짝이는 눈부신 달력을 보며 도마뱀을 사자꾸나!
그런데 변수가 또 생겨버렸다. 기다릴새도 없이 곧바로 도마뱀을 사 주는 아들의 아빠. 그래서 스티커는 계속 붙이는 조건으로 도마뱀을 키우게 되었다.
결국 아들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둘째딸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자신도 갖고 싶다면 아빠를 꼬드겨서 두번째 도마뱀을 사왔다.
라임이와 레몬이.
도마뱀이 우리집에 두 마리나 생겼다.
아들은 '라임아!' 하고 부를 때, 라임이를 핸들링 시킬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영양식을 주겠다고 살아있는 밀웜을 주기 시작하면서 먹이 주는 시간이 공포의 시간으로 물들어버렸지만 아들은 꿋꿋이 두려움을 이겨가며 라임이를 키우고 있다.
밀웜을 낚아채서 먹는 모습을 표범에 비유 하니, 그 시간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도마뱀이 좋아하는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도마뱀이 좋아하는 시원한 대자리를 깔아 놔두기도 한다. 라임이의 고향을 알아보니 뉴칼레도니아,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 본다. 그리고 라임이의 도마뱀 부모를 상상해보는 아들을 본다.
도마뱀이라니, 나에게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끔찍하다고 생각했던 일 중의 하나를 아들을 위해 과감히 접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아들이 사랑하는 라임이를 나도 사랑해 보려고 내 손 위에도 올려보고 내가 읽는 책으로 점프하는 모습도 지켜본다.
난생 처음 도마뱀을 사랑해보려고 한다.
아들을 위해. 딸을 위해.
라임이와 레몬이 덕분에 도마뱀의 괄호가 열리고 닫힌다.
아름다운 순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