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검사를 할 때마다 결과가 달라지곤 해. 외향형(E) 인간일 때도, 내향형(I) 인간일 때도 있어. 49:51, 혹은 52:48, 그런 비율로 왔다 갔다 하더라고. 외향인 중에 가장 정적이고, 내향인 중에 가장 활동적인 사람. 그게 나야.
날마다 성격이 달라지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향형 성격이 튀어나올 때가 많아졌어. 어릴 땐 사람 많은 번화가를 돌아다니는 것을 즐겼거든. 새로운 모임에 참석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재미있었어.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과 만나고 나면 기가 빨려서, 혼자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을 꼭 가지곤 해.
뉴질랜드에서 몇 달 지내기로 결심했을 때, 영어가 넘쳐흐르는 환경에 놓이면 자연스레 영어 실력이 늘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자연스러운 영어 실력 향상'은 외향형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이었어. 영어에 노출되려면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데 내향형 인간이 되어버린 요즘의 나는 그게 쉽지 않더라고.
지난주부터는 오클랜드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영어 대화 모임에 참석하고 있어. 억지로라도 듣고 말할 기회를 만들려고 말이야. 영어로 게임도 하고 퀴즈도 맞추다 보면 굉장히 알찬 시간을 보낸 것처럼 느껴져. 그런데 딱 그게 끝이야. 거기서 관계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겠더라고. 아니, 사실은 그 이상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어. 그런데 '누가 봐도 E 중의 E인 사람'을 보니까 머리가 띵해지더라고.
모임에서 만난 한국인 안나 이야기야. 안나가 구사하는 영어 문장은 나보다 훨씬 어색한데도 아무한테나 말을 걸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사교력이 엄청난 거야. 누구라도 안나의 미소와 밝은 분위기를 보면 친구가 되고 싶을 것 같았어. 실제로 안나는 모임에 참석한 첫날부터 몇 명의 대만 친구를 사귀어서 언어 교환도 하고, 오클랜드 생활에 필요한 정보도 얻더라고. 외국에 살면서 영어에 노출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한다는 건 저런 거구나 싶었어.
안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내가 모르는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어. 처음에는 안나의 정보를 주워들으며 감탄만 하다가, 하루는 안나를 따라 해보려고 칠레 친구와 번호를 교환했어. 그런데 그 사람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어. 하긴 한국인 친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외국인 친구는 오죽하겠어?
예전 언젠가는 나도 E의 대명사처럼 모임에 나가서 새 친구를 만드는 게 낙이던 때가 있었는데요즘은 쉽지가 않아. 나이가 들며 신경 쓸 일이 많아져서 다른 사람에게 쏟을 에너지가 부족해진 걸까? 아니면 늘 붙어 지내는 남편과의 관계에 에너지를 다 쏟아서 남는 에너지가 없는 걸까?최근 유퀴즈에 출연한 김연아가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을 봤어. 예전엔 E였는데 점점 I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김연아의 마음에 대해 뭣도 모르지만 괜시리 내적 친밀감을 쌓아 보았어. 내 MBTI도 잘 모르겠고 현명한 외국 생활은 더더욱 모르겠지만, 우상이던 퀸연아와 닮은 점을 한 가지 찾았으니 오늘 하루는 그걸로 대충 넘어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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