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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교사가 본 CELTA 영어 교생 실습

뉴질랜드 7개월 살기 Day31

by 여행하는 과학쌤

요즘은 마음만 먹는다면 돈 들이지 않고도 정보와 배움이 널린 세상이라 참 좋아. 오늘은 한 어학원에서 재미있는 수업을 듣고 왔어. CELTA(영어 교사 자격증) 코스가 진행되는 곳인데, 이 자격증을 준비하는 예비 영어 교사들의 학생을 모집하더라고. 예비 교사들은 수업을 들어줄 학생이 필요하고, 나 같은 외국인들은 무료로 영어를 배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 상부상조라는 말에 꼭 맞는 곳이었어. 나는 세 명의 예비 교사들이 행하는 2시간짜리 수업 학생이 되었어.


출처 : 캠브릿지 대학 홈페이지 CELTA 소개


첫 번째 선생님은 단어 수업을 맡았어. 기사 자료의 앞뒤 맥락을 바탕으로 어려운 단어의 뜻을 파악하는 거야. 옆에 앉은 파트너 함께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매칭하는 활동을 했는데, 내 파트너는 영어를 꽤 잘하는 중국인 같았어. 나는 단어의 정의를 절반도 못 읽었는데 혼자 답을 쭉쭉 찾으면서 "agree?" 하더라고. 단어는 워낙에 내가 어려워하는 약점이야. 어릴 때부터 맥락 없이 나열된 영어 단어장을 외우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 열심히 외우더라도 단어 시험을 보고 나면 거짓말처럼 다 잊어버렸거든.


오늘의 단어 중에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건 'abusive'랑 'threatening'이야. 맥락상 부정적인 행동을 형용하는 단어인 건 알겠는데 확한 정의는 헷갈리더라고. 미래가 촉망되는 예비 교사 리아나가 가려운 곳을 긁어줬어. 'abusive'는 실제로 불량한 행동을 했을 때 사용하면 되고, 'threatening'은 아직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니지만 위협을 느꼈을 때 사용하면 된대. 설명을 듣고, 많은 한국 청소년들이 abusive language를 쓴다고 말했더니, 중국인 파트너가 깜짝 놀라면서 잘못 이해한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 'abusive'는 심각한 불량을 의미한대. 나로서는 중국 청소년의 불량 기준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얼마큼 심각할 때 'abusive'를 쓸 수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야.


두 번째 선생님은 같은 기사 자료를 가지고 문법을 짚어 줬고, 세 번째 선생님은 오늘 배운 단어와 문법을 바탕으로 영작을 하도록 도와줬어. 옆에 앉은 파트너와 함께 하면서 스피킹 연습은 덤으로 얹어졌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수업이었어. 그런데 두 번째랑 세 번째 선생님은 긴장한 티가 많이 나더라고.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당황해서 틀린 답을 하기도 하고, 시간 분배를 잘못해서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어영부영 황급히 끝을 맺어버리기도 했어. 학생 자격으로 수업을 들은 거지만, 교사로 10년 동안 일했던 짬밥이 있다 보니 예비 영어 교사들이 얼마나 긴장하고 머리가 하얘졌을지 눈에 보이더라고. 신규 교사일 때, 아니, 꽤나 최근까지 나도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보였던 터라 옛날 생각에 속으로 미소 지었어.



교사들은 수업을 준비할 때 지도안을 짜. 도입부에 무엇으로 관심을 끌지, 핵심 개념을 잘 전달하려면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같은 것들을 계획하는 거야. 매번 정식 지도안을 작성하지는 않더라도, 간단하게나마 지도 계획을 세워야 강의 시간을 알차게 꾸려나갈 수 있어. 그렇지만 다들 알잖아? 언제나 실전은 계획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 개념이나 활동 규칙만 설명했는데 시간이 끝나버린다거나, 과도한 반응이나 무반응 때문에 진행이 어려워진다거나, abusive language를 주고받는 학생들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거나. 야심차게 준비한 수업안과 다르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당황하다가, 종이 치면 얼렁뚱땅 마무리 멘트를 하고 교실을 나오는 건 너무나 흔하게 겪는 일이야.


지금의 나는 어지간한 상황들을 겪어봤기 때문에 계획과 달라진 수업에도 당황한 티를 내지 않을 여유가 생겼어. 그렇지만 몇 년 동안은 꽤 자주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했지. 새로운 학교로 옮긴 직후라거나 처음 가르쳐 보는 내용을 수업할 때는 특히나 더. 남편은 CELTA 코스의 예비 영어 교사들이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보인다고 했어. 나는 절대 아니라고 했지.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저 자리에만 서면 아는 것도 까먹고 머릿속이 엉켜버린다니까. 내 기준에선 세 명의 예비 교사 모두 합격이야. 여기서의 나는 심사위원도 교사도 뭣도 아닌 외국인 학생일 뿐이지만.


오늘의 Tip
CELTA는 실습 위주로 진행되는 자격증 코스로, 외국인에게 영어 수업을 할 수 있는 강사 자격증이 발급됩니다. 영어를 잘 한다면 정식으로 CELTA 코스에 등록해서, 강사로서 수업 실습을 하고 자격증에 도전해 보세요. 또는 languages.ac.nz 사이트에서 free lesson 을 검색하면, 영어 수업 실습에 학생 자격으로 참석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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