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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하루

뉴질랜드 7개월 살기 Day45

by 여행하는 과학쌤

내 침대 옆 탁자에는 안대가 놓여 있어. 우리 방은 동쪽을 향해서 커다랗게 창이 나 있어서, 해가 뜨기 시작하면 잠결에도 눈이 부신 걸 느끼고 깨어나거든. 조금씩 날이 밝아질 때쯤 일어나서 더듬더듬 안대를 집어 쓰고 다시 잠 드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야. 오늘은 일을 가지 않는 날이라 안대를 쓴 다음에 마음 편히 늦잠을 잤어.


10시쯤 되니 비닐하우스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후덥지근한 공기가 작은 방을 가득 메웠어. 땀을 흘리면서 잠에서 깨어났지. 겨울이 되면 뉴질랜드는 바깥보다 실내가 더 춥다고 하던데, 다행히 내가 구한 집은 신축 아파트라 단열이 잘 되는 이중창을 갖추고 있더라고. 물론 햇빛이 들지 않는 밤에 추운 건 어쩔 수 없어. 한국 같은 보일러는 당연히 없고 히터는 거실에만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온열 방석을 등 뒤에 깔고 배 위로는 이불을 두 개나 덮고 자야 해. 어쨌건 해가 뜬 다음에는 땀을 흘릴 만큼 따뜻하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하루를 시작했어.


우리 아파트의 장점은 또 있어. 피라미드식으로 지어졌다는 거야. 그러니까 1층에 평수가 가장 넓은 집들이 있고, 위 층으로 올라갈 수록 평수가 점점 작아지는 거야. 그러면 모든 층의 베란다에서 뻥 뚫린 하늘을 볼 수가 있어. 1층의 베란다를 제외한 면적으로 2층을 짓고, 2층의 베란다를 제외한 면적으로 3층을 짓는 식이라 모든 베란다에 천장이 없거든. 물론 비를 그대로 맞기 때문에 물건을 두기는 조금 어려워.


눈을 떴을 때 마침 비가 그쳤길래 베란다에 요가 매트를 깔았어. 바닥이 조금 젖어 있긴 했지만 이제는 적응이 돼서 이 정도 축축함은 괜찮아. 유투브 요가 영상을 틀어 놓고 되는 대로 셀프 요가를 시작했어. 정말 놀라운 건 집 밖으로 고작 1m를 나왔을 뿐인데 여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 펼쳐졌어. 집 안에서도 통 유리창을 통해서 바깥 하늘이 잘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천장이 없는 진짜 야외에서 보는 하늘은 완전히 달랐어. 파란 배경 아래를 흘러가는 구름과 들락날락하는 햇살을 보느라 요가 동작이 힘든 줄도 모르겠더라.



이번 요가를 하는 동안에는 잡념이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해탈에 이른 부처가 된 것 같았어. 파란 하늘과 태양이 있음에 감사하고, 완벽한 베란다와 단열을 갖춘 아파트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아침 나절 잠깐 동안 세상 만사가 기꺼워졌어.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잖아.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마음으로 사소한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보내야겠어.


그런데 쓰고 보니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도, 천장 없는 베란다도 한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것들이잖아? 사소한 것이 아닌 커다란 것에 감사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네. 하하.


오늘의 Tip
뉴질랜드에 집을 구할 때 apartment와 house 중에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뉴질랜드의 house는 대부분 지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단열에 취약한 편입니다. 계절이 겨울이라면 apartment에 거주하는 것이 관리비를 아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apartment보다 비싸지만 단독 house보다는 저렴한 townhouse가 많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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