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들을 이번 주에 잔뜩 발행한 건 집에만 갇혀 있어서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야. 왜냐고? 발목을 다쳐서 움직일 수가 없었거든.하필이면 이럴 때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걸까?
지난 주말에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어. 모처럼 멀리 떠난 나들이에 마음이 들떴나 봐. 지금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를 후회되는 순간인데, 가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러니까 털어놓자면, 나무 위로 조금 올라가 보고 싶었어. 그렇게 높이는 아니야. 그냥 첫 번째 나뭇가지 정도만 만져보고 싶었어. 볼록한 옹이에 발을 딛고 살짝 손을 뻗었는데 그만 미끄러진 거야. 땅으로 떨어지면서 내 체중에 눌린 발목이 뽀각 꺾였고.
이놈의 왼쪽 발목은 몇 년 동안 나를 고생시킨 발목이야. 한창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을 때 하이힐을 신고 달리다가 심하게 접질렸거든. 나는 젊은 내 몸을 너무 믿었어. 다친 곳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는다고 생각하고 발목을 돌보지 않은 거지. 발을 절면서도 직장에서 하루 종일 서 있고, 절뚝거리면서도 주말에 약속된 일정을 다 소화했어. 허접한 발목 보호대를 끼고 자전거도 타고 패러글라이딩도 탔어. 결국엔 보도블록의 작은 틈에서도 삐끗거리는 불안정한 발목을 가지게 됐어. 발목을 꺾어서 바지를 입는 것조차 엄청나게 아팠다는 게 믿어져? 그렇게 몇 년 동안 병원을 전전하다가 대학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서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발목으로 돌아오게 됐어. 그래, 그 발목을 다시 다친 거야. 뉴질랜드에서.
왼발에 힘을 실을 수도 없고, 잠을 자면서도 아파서 몇 번을 깼는지 몰라. 다음 날이 되자 대충 보기에도 심각한 수준으로 부어올랐더라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물리치료 병원에 갔어. 치료사가 이렇게 저렇게 발을 만져보더니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올쏘 어쩌고를 찍으라고 하더라고. 알고 보니 ultrasound, 초음파였어. 우리나라에서는 발목 초음파 촬영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처음에 못 알아들었는데, x-ray로는 인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초음파로 스캔해야 한다는 말에 믿음이 갔어.
초음파 스캔을 지시받은 것까진 좋았는데 다음 절차가 복잡했어. 소견서를 들고 초음파 촬영 센터로 가야 한다는 거야. 개인적으로 예약을 잡아야 했는데 당일은 불가능해서, 다음날 남아 있는 가장 빠른 시간으로 초음파 촬영을 예약했어. 그리고 다다음날 물리치료사에게 결과가 전달되면 치료실에 다시 가야 하는 시스템인 거야. 내 발목에 대해 이야기를 듣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3일이 걸리는 거지. 허허. 어쩌겠어, 시키는 대로 잘 따라야지.
초음파 촬영은 40분이나 걸렸어. 시간 대비 효율 때문에 한국에서는 x-ray만 그렇게 찍나 봐. 오랜 촬영 끝에 인대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어. 기나긴 영어 문장 속에 completely라는 말이 귀에 박혔어. 앞쪽 인대는 완벽하게 끊어졌고, 옆쪽 인대는 부분적으로 끊어졌는데 범위가 크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손상에 비해 현재 움직임이 좋기 때문에 이번 사고로 다 끊어진 게 아니라 옛날부터 안 좋았던 부분을 다친 것 같다는 설명까지 들었어. 내 과거를 말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나 완벽한 판정을 받다니. 아, 물론 내 영어 듣기 실력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정확하게 들은 건 아닐 수 있어.
어쨌든 결론은 현재의 움직임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경과를 지켜보면서 재활치료를 하기로 했어. 머나먼 타국에 와서 재활 치료라니. 별 경험을 다 한다, 그치? 한 가지 좋은 건 한국이었으면 병가를 쓸 수 없어서 아픈 발로 어떻게든 일을 했을 텐데, 여기서는 무급 휴가를 받아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어. 일주일 정도 발을 안 쓰니까 예후가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번 주말에는 관절에 좋다는 뉴질랜드산 초록입홍합이나 잔뜩 먹어야겠어.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누릴 수 있는 거나 다 누려야지 뭐. 안 그래?
오늘의 Tip 뉴질랜드에는 ACC 보상 제도가 있습니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뉴질랜드 내에서 사고로 인해 다쳤을 경우 나라에서 의료비를 보상해주는 것이죠. 뉴질랜드에서 소비하는 모든 것에 ACC 세금이 붙어 있기 때문에, 관광객도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사고 경위를 이야기하고 ACC claim form을 작성하면 되는데, 병원에 따라서 개인 부담금 발생액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