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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없던 내 명의 자동차, 뉴질랜드에서 구입하기

뉴질랜드 7개월 살기 Day 20

by 여행하는 과학쌤

오클랜드에 집을 구했을 때, 시티 중심에서 5km 정도 떨어진 거리는 고민거리가 아니었어. 그 정도는 여차 하면 걸어 다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뉴질랜드의 6월은 추운 겨울이고, 거의 매일 비가 내려. 뚜벅이에게 반갑지 않은 계절이지. 게다가 시티가 아닌 곳에 가려면 무조건 두어 번 갈아타야 하는데, 버스 시간이 안 맞으면 멀지도 않은 곳까지 2시간이 걸리는 거야. 차가 없으면 뉴질랜드에서 살기 힘들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어.


우리는 날을 잡고 중고차 매장 두 군데에 들렀어. 첫 번째로 간 곳은 1000만 원 언저리의 매물이 대부분이었어. 기대한 것보다 비싼 매장에서 다들 비슷하게 행동하잖아? 어색한 미소로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면서 둘러보겠다며 빠져나왔어. 그다음 찾은 매장에는 200만 원에서 400만 원 사이의 저렴한 가격표가 차 유리창에 끼워져 있었어. 그런데 운전을 해 보니 엑셀을 밟아도 속력이 나지 않더라고.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비지떡은 고소하기라도 하지 안 굴러가는 차는 정말 무용지물이잖아. 중고차 매장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어.


결국 한인 커뮤니티를 뒤져서 중고차를 팔고 싶어 하는 개인과 약속을 잡았어.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없는데 영어로 대화하면 사기를 당해도 모를 것 같아서, 말이라도 통하는 한국 사람들을 믿어 보기로 한 거지. 총 세 대의 자동차를 보러 갔는데, 뚜벅이인 우리는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한참을 걸으면서 긴 여행을 해야 했어.



처음 만난 자동차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달고 있는 유럽 차였어. 변속기의 원리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지만, 다행스럽게도 엄마의 수동 차를 1년 동안 몰았던 적이 있거든. 수동 변속을 제대로 못 하면 차가 심하게 덜덜거리거나 시동이 꺼져 버렸는데, 이 차가 딱 그 느낌으로 계속 덜덜거리는 거야. 듀얼 변속이기 때문에 시동이 꺼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문제가 생겼거나 곧 문제가 터질 차구나 싶었어. 모든 경험은 언젠가 쓸 데가 있나 봐.


두 번째로 만난 자동차는 사연이 깊어. 가는 동안 이상하게 버스 시간이 딱딱 맞아떨어지더라고. 내려서 걸어가는 길에 야자수가 펼쳐진 것도 너무 예뻤어. 아주 잘 관리된 부자 동네에 세워진 차를 보는데, 이거구나! 느낌이 왔어. 그런데 우리가 여러 명과 약속을 잡다 보니 헷갈린 거야. 그 시간에는 다른 장소로 갔어야 했던 거지. 하하. 버스 환승이 이상하게 완벽하더라니. 시간 관계상 두 번째 차는 시승해보지 못하고 부랴부랴 택시를 불러서 세 번째 차를 만나러 갔어. 세 번째 차는 겉보기엔 멀쩡했는데 오랫동안 몰지 않고 차고에 보관했던 차라 그런지 엔진 소리나 브레이크 느낌이 부자연스러웠어.


우리는 다시 두 번째 자동차를 시승하러 가기로 했어. 아까 택시비를 낭비했으니 이번엔 두 다리로 40분을 걸었어. 다시 만난 두 번째 차를 직접 몰아보니 이거구나! 확신이 깊어졌어. 매일 몰고 다녔다는 말 그대로 애정 어린 관리를 받은 티가 났어. 겉에는 여기저기 상처 난 낡은 차인데 엔진이 조용하고 승차감이 부드러운 거야. 사람이건 자동차건 겉모습보다 중요한 건 내면 아니겠어?


이것으로 우리의 7개월을 책임져줄 차량이 결정되었어. 가격은 단돈 210만 원! 복잡한 절차도 필요 없어. 인터넷으로 순식간에 명의 변경을 하면 끝이거든. 내 명의의 자동차는 한국에서도 없었는데 뉴질랜드에서 내 차를 가지게 된 거야. 사실 나는 겉모습을 중요시하는 얼빠인데, 조금 녹슨 내 차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아.



오늘의 Tip
nzta.govt.nz/online-services 사이트에서 Let us you've bought a vehicle 에 들어가면, 차량 정보와 면허증을 등록하여 간단하게 명의 변경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차를 팔 때는 Let us you've sold a vehicle 에 들어가면 됩니다. 자동차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vinz.co.nz 사이트 등에서 vehicle inspector를 구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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