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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유람 feat. 중력 가속도와 종단 속도

스위스 하늘에서 들리는 daebak gaejjeonda

by 여행하는 과학쌤
스위스 하늘에서 들리는 daebak gaejjeonda

금빛 수염을 짧게 기른 그는 한국어 단어 몇 개를 아주 잘 알았다. 나는 그의 국적도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마자 "대박, 개쩐다! 미쳤어!" 같은 말들을 줄줄이 쏟아내었다. 그는 나와 함께 스위스 하늘에서 뛰어내릴 파트너 J였다.


물가가 비싼 스위스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려면 그만큼 높은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 어쩌겠는가. 들꽃이 핀 초록 들판, 그리고 눈 덮인 알프스 산봉우리들과 사랑에 빠져 버렸는데. 그동안 J가 만났던 수많은 한국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이 매력적인 풍경을 보며 비슷한 감탄사들을 뱉었으리라. 스카이다이빙 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남기겠다고 하면 경비행기를 타러 갈 때부터 촬영이 시작된다. J는 카메라를 들이밀며 계속 말을 걸었고, 한국어로 편하게 말하라며 "대박! 좋아!" 같은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탑승 전 촬영이 꽤나 길어졌는데 J가 첫 번째로 뛰어내릴 다이버였기 때문에 경비행기에 마지막 순서로 타려고 시간을 벌고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수다스러운 J 덕분에 긴장이 풀린 어느 순간 J가 갑자기 경비행기 문을 열어젖혔다. 태풍인 것 마냥 엄청난 바람이 불어 들어오면서 정말로 구름 위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하늘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뜻밖의 풍경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무서워할 틈도 없었다. 심호흡을 하거나 다리를 뻗는 단계들을 생략하고,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J가 즉시 몸을 날렸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허공에 있었다. 몇 초 정도 격하게 소리를 지르고 나자 그 후에는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이 꿈결처럼 멀고도 먼 곳에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을 향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뜨겁게 반짝이는 햇빛, 가끔 보이는 하얀 구름, 그리고 시끄러운 바람 소리와 함께 정말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열네 번째 과학유람, 중력 가속도와 종단속도


경비행기에서 몸을 날린 우리는 지구 중력에 의해 수직 아래 방향으로 떨어진다. 지구가 계속해서 우리 몸을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데, 이렇게 중력에 의해 물체의 운동이 가속되는 정도를 중력 가속도라 한다. 중력 가속도는 일정한 값을 가지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한 공간의 모든 물체는 똑같은 정도로 가속되며 떨어진다. 갈릴레이의 유명한 사고 실험이 바로 이것이다. 쇠공과 깃털을 동시에 떨어뜨리면 같은 가속도로 떨어져 동시에 땅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무게가 다른 두 공을 떨어뜨려 증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갈릴레이는 이론적으로 이를 증명했다. 공기와의 마찰 때문에 이론과 다르게 물체마다 가속도의 차이가 생겨 실험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기나 물처럼 흐르는 유체 속에서 물체의 운동은 저항을 받게 된다. 이때 물체의 부피나 모양에 따라서 저항하는 힘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떨어지는 물체의 가속도가 달라진다. 공기 중에서 깃털이 쇠공보다 천천히 떨어지는 이유는 깃털의 무게가 가볍기 때문이 아니라 깃털의 모양 때문에 저항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물체의 모양 뿐만 아니라 아래로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더 큰 저항을 받는다. 지구가 당기는 힘에 의해 아래로 점점 빠르게 떨어지는 동안 그것을 방해하는 저항력도 점점 커지는 것이다. 아래 방향의 중력은 항상 일정한 값을 가지는데 위 방향의 저항력만 점점 커지기 때문에 아래 방향으로 끌어 당기는 힘과 위 방향으로 방해하는 힘이 같아지는 순간이 온다. 이때부터 물체의 낙하 속도가 일정해지는데 이것을 종단 속도라고 한다.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속도나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람의 속도가 무한히 빨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종단 속도로 떨어질 때 즈음이면 더이상 스카이다이빙이 무섭지 않다. J는 다시 카메라를 들이밀며 외쳤다. "daebak!! micheosseo??" 만년설과 비슷한 높이에서 명화 속 한 장면들을 내려다보며 하늘을 날고 있는데 이보다 더 대박인 순간이 어디 있을까.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나도 함께 소리쳤다. "daebak!! gaejjeo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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