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페인 유람 feat. 풍차와 발전기

스페인 범칙금은 어떻게 내나요

by 여행하는 과학쌤
스페인 범칙금은 어떻게 내나요


다시는 스페인에 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마드리드에서 라만차는 애매하게 멀었고, 라만차의 작은 마을인 캄포 데 크립타나까지 기차를 타고 다녀오려면 그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다. 캄포 데 크립타나에 있는 풍차를 보는 것이 내 스페인 여행의 로망이었기 때문에 렌터카 회사를 찾았다. 해외 여행 중에 운전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렌터카 회사로부터 두 건의 교통 법규 위반 사실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캄포 데 크립타나에는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하고 달려들었다는 풍차가 있다. 소설 '돈키호테'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통해 "지금의 모습이 아닌 되어질 모습을 연모한다"는 돈키호테를 보았다. 그리고 패닉의 노래 '로시난테'에서 "무뎌진 창에 아무도 겁먹지 않더라도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달려보자"는 돈키호테의 외침을 들었다. 라만차에 가면 허상을 쫓는 가짜 기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돈키호테로부터 영감을 받은 후대의 수많은 예술가들처럼 나 또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드리드에 있는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빌려 곧장 라만차로 향했다. 신호등 체계가 혼란스러워 클락션 소리를 여러 번 듣긴 했지만 무사히 캄포 데 크립타나의 골목길에 차를 세웠다. 작은 마을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곳에 풍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돈키호테가 마을의 어디에 머물든 풍차를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얀 빛을 내는 한낮의 풍차에서는 거인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까만 풍차 날개와 대조되는 오돌토돌한 흰색 외벽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녹슨 빨랫줄에 널린 폭닥폭닥한 솜이불 같이 포근한 풍경이었다. 해가 질 무렵에는 하늘의 색이 달라지면서 풍차도 모습을 바꾸었다. 풍차의 하얀 외벽은 무엇으로든 물들 수 있는 배경이었다. 각자의 방향을 향해 늘어선 풍차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긴 그림자를 만드는 동안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차에서 거인의 모습이 보였다.



열다섯 번째 과학 유람, 풍차와 발전기


풍차는 바람을 이용해 동력을 얻는 기계다. 풍차의 날개가 돌아가면 날개 축과 연결된 펌프나 기계가 함께 회전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물을 끌어올리거나 곡식을 빻는다. 강물이 빠르게 흐르는 지역에서는 곡식을 빻을 때 물레방아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라만차 지역은 강물의 유속이 느린 대신 1년 내내 바람이 잘 부는 편이라 풍차를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물레방아와 풍차 모두 고유의 목적을 잃고 방치되었다.


석탄과 같은 연료를 태우면서 물을 끓이고, 이때 얻어진 수증기가 피스톤이나 회전축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계 장치를 증기기관이라 한다. 현대의 화력발전소 역시 증기기관과 비슷하게 화석 연료를 태우면서 물을 끓여 얻어진 수증기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리는 시스템이다. 비교적 건설이 쉽고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구에 매장되어 있는 화석 연료가 점차 고갈되고 있기에 다른 에너지 자원을 찾아야만 한다. 게다가 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온실 가스와 미세먼지 때문에 환경 문제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책 중 하나가 풍력발전기다. 바람에 의해 회전하는 풍차의 날개가 발전기를 돌려 전기 에너지를 얻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온실 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돈키호테의 풍차가 네 개의 팔을 가지고 있던 것과 달리 현대의 풍력발전기는 일반적으로 세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날개가 너무 무거워지면 회전이 느려져 전기가 생산되는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풍력 발전기와 돈키호테의 풍차는 날개 갯수 외에 큰 틀에서 매우 유사한 구조다. 우리는 때로 풍차와 같이 과거 속에서 답을 찾기도 한다.


먼 과거가 되어버린 내 스페인 여행에서는 무엇을 찾을 수 있으려나. 한국에 돌아온 후 신용카드에서 80유로가 결제되었다. '금지된 도로 진입'과 '불법 주차'가 통지되었는데, 이 80유로는 렌터카 회사가 위반 사실을 전해주는 비용일 뿐이었다. 범칙금은 렌터카 회사가 아닌 스페인 정부에 납부해야 했는데 방법도 금액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끝내 돈을 납부하지 못했다. 지금쯤 범칙금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다. 어쩌면 다시는 스페인에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돈키호테의 거인을 찾았으니 그걸로 되었다. 이제는 돈키호테의 풍차 삽화에서, 황포한 거인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keyword
이전 14화스위스 유람 feat. 중력 가속도와 종단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