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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과학쌤 Oct 20. 2024

미니멀 라이프 추종자의 혼수

 결혼 전 몇 년 동안 원룸 1인 가구 생활을 했다. 덕분에 유행을 선도하는 미니멀 라이프 추종자가 되었다. 원룸에는 애초에 물건을 둘 공간이 없기도 했고, 이사할 때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려면 최대한 짐이 없는 편이 좋았다. 처음에는 본가에 짐을 두고 조금씩 가져다 쓰며 살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대부분의 물건을 당근마켓에 처분했다.


 최종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가전제품은 드라이기와 커피포트가 전부였다. 전자레인지도 없어서 중탕으로 햇반을 데워먹었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커피포트가 물을 빠르게 끓여주었기 때문이다. 원룸에 옵션으로 있던 냉장고는 거의 비어 있었다. 알배추를 하나 사면 3일 내내 알배추찜을 해 먹으며 즉시 재료를 소진하는 식이었다. 냉장고가 꽉 차 있으면 음식이 천천히 상할 뿐이다.


 결혼 후에도 내 습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나, 거실 하나 있는 작은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정했다. 대출 없이 매매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작은 집에 들어갈 혼수로는 침대,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뽑았다.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는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필수품이고, 내 기준에서는 건조기도 필수다. 작은 집에서 자연 건조로 빨래를 말리는 것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며칠을 들여 기껏 말렸는데 날씨 탓에 오히려 꿉꿉한 냄새가 날 때도 많았다.


 대신 에어컨도 작은 벽걸이 에어컨으로, 냉장고도 300리터짜리 작은 냉장고로 장만했다. 식재료는 조금씩 사서 빨리 먹는 게 좋고, 냉장고는 커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은 여전히 확고하다. 작은 냉장고에 맞춰서 냉장고장을 좁게 짜고, 빈 공간에 싱크대를 넓혔다. 싱크대는 어느 정도 커야 불편함 없이 요리와 설거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원룸 생활에서 깨달은 사실이다.


 거실 한 면에는 옷을 넣어둘 붙박이장을 짜고, 남는 공간에는 소파와 식탁을 두었다. 거실이 좁아서 고민이 많았는데, 창고형 가구 쇼룸에서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애매하게 작은 사이즈라 아무도 사가지 않고 세일 딱지가 붙은 식탁이 우리에겐 딱이었다. 소파도 저렴하게 판매되는 3인용 쿠아텍스 소파가 신혼집 거실에 들어맞았다.


 값을 제외한 초기 정착 비용으로는 생각보다 큰 액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렇게 꾸민 집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요즘은 카페에 가는 것보다 거실 식탁에 앉아 있는 게 더 좋아서 집순이가 되어간다.  집이지만,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집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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