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태평양 천국의 코코넛과 빵과일

by 여행하는 과학쌤

타히티에서 먼바다를 바라보면 섬이 보인다. 무레아 섬. 페리를 타고 30분이면 이 섬에 도착할 수 있다. 무레아에서는 페리 도착 시간에 얼추 맞춰서 로컬 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된다.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섬을 따라 한 바퀴 빙 둘러 있는 순환 도로가 전부이기 때문에, 길 따라 걷다가 길 따라 돌아오면 된다.



무레아에 머무는 동안에는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여행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재미도 물론 있었만, 가에 널린 망고 나무, 코코넛 나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땅에 떨어져 있는 과일들은 주로 썩어 있었는데, 한 번은 걸어가는 우리 옆으로 코코넛 한 개가 뚝 떨어졌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코코넛을 열 수 없었고, 머리 위에 떨어졌으면 죽었겠구나 싶을 만큼 단단했다. 숙소에서 일하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코코넛을 열자 코코넛워터가 조금 나왔다. 한국 마트에서 파는 코코넛과 비슷했다.


또 한 번은 메인 도로 옆 샛길을 걷다가 만난 거주민이 바나나를 먹어본 적 있냐며 본인의 바나나 나무를 자랑한 일이 있었다. 바나나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호응을 보이지 않던 우리가 코코넛을 먹어보고 싶다고 하자, 그 친구는 잠깐 기다리라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내 머리통보다 커 보이는 청난 크기의 코코넛을, 양손에 하나씩 두 개나 들고 그가 돌아왔다. 코코넛 나무에 올라가서 갓 잘라온 것처럼 보였다.


칼로 코코넛을 몇 번 베자 분수처럼 물이 솟구쳐 올랐다. 아까운 코코넛워터가 버려지고도 여전히 많은 물이 들어 있는지, 내 힘으로는 두 팔로 받쳐 들어도 무거웠다. 그렇게 얻은 코코넛 두 개에는 이틀 내내 종일 마시고도 남을 만큼 코코넛워터가 가득했다. 살면서 처음 만난 진짜 코코넛이었다.


어느 날에는 바다에 떠밀려 온 망고를 깎아 먹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길가에 떨어진 빵과일을 주워서 요리하기도 했다. 빵과일은 우둘투둘한 타원형의 열매인데 잘 익으면 겉을 눌렀을 때 스펀지처럼 푹 꺼진다. 빵과일을 주워온 첫날에는 살짝 단단해서 감자채 썰 듯 얇게 썰어서 프라이팬에 구워 먹었다. 구운 빵과일은 고구마튀김과 비슷한 맛이 났다. 원체 구황작물을 좋아해서 입맛에 꼭 맞았던 터라 다음 날에도 똑같이 해 먹고 싶었는데, 하루 뒤에는 조금 더 말랑하고 끈적한 질감으로 변해 있었다. 현지인들은 숙성된 빵과일을 크림 먹듯 떠먹는다고 했다.


무레아 섬에서는 식비를 거의 쓰지 않았다. 정말로 자급자족. 코코넛, 망고, 바나나, 빵과일... 모든 것들을 자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진짜 과일들의 천국이었다.



빵나무는 뽕나무과 빵나무속에 속한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우둘투둘한 것처럼 빵과일도 우둘투둘한데, 그 크기가 훨씬 크고 딱딱하다. 말린 가루는 밀가루처럼 쓰일 수도 있어서, 말 그대로 빵을 만들 수 있는 원료 과일이다. 녹말이 풍부해서 튀기거나 구우면 감자, 고구마와 비슷한 맛이 난다. 감자, 고구마와 달리 열매이기 때문에 과육을 충분히 발효시키면 크림처럼 달고 부드러워진다. 기후 변화에 강해서 다양한 열대 지역에서 자랄 수 있는 식량 자원이다.
keyword
이전 02화요라나 타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