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레아 섬에 잡은 에어비앤비는 돌고래 군락지와 가깝다는 장점이 있었다. 숙소에서 무료로 카약을 빌려준다고 광고가 되어 있었고,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면 돌고래를 만날 수 있음을 수많은 후기글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특히 해 뜰 무렵 20분 정도 카약을 타고 가면, 근처 절벽에서 그날의 활동을 시작하는 수많은 돌고래 떼를 만날 수 있단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기를 피해서 여행 날짜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레아 섬에 있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잠깐씩 비가 그쳤을 때 카약 타기를 시도해 봤지만 멀리까지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람이 강해서 카약이 흔들렸고 노를 젓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리가 매체에서 만났던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는 죄다 해가 쨍한 날의 바다였다. 날이 좋을 때의 바다는 몇 억 짜리 예술 작품 같지만, 흐린 날의 바다는 속을 알 수 없이 무섭게 시커메졌다. 잡아먹을 듯한 분위기의 바다 위에서 벌벌 떨다가 숙소를 향해 노를 틀어야 했다.
무레아 섬을 떠나는 날에는 한국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힘든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숙소 바로 앞까지 택시를 불렀는데, 방에서 택시까지 가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숙소 주인은 이 시기에는 보통 날씨가 좋은데 예상치 못한 사이클론이 왔다며 유감의 뜻을 전했다. 택시 기사 역시 지구가 미쳐가는 것 같다며, 이 시기에 이런 비는 본 적이 없다고 마찬가지의 말을 했다. 우기를 피하느라 비행기며 숙소며 더 비싼 값을 치르고 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우울했다.
무레아 공항에서도 여전히 비는 쏟아졌다. 항공사에서는 공항에서 쓸 수 있는 우산을 빌려주었다. 남태평양 작은 섬의 공항은 버스터미널처럼 생겼고, 야외의 활주로까지 직접 걸어가서 비행기를 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무레아 섬에서 보라보라 섬까지 이동하는 내내 아쉬운 마음으로 비행기 창을 살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구름의 색이 맑아지고, 그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짙푸른 색과 하늘색의 경계가 분명한 바다였다. 그것만으로도 보라보라 여행은 성공이었다. 소다색 물빛과 오테마누 산을 함께 보는 것이 보라보라의 메인 풍경이라는데, 산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산 꼭대기가 내내 구름에 덮여 있었지만, 검은 구름이 아닌 흰 구름인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사이클론 속에서 운 좋게 보라보라가 피어났다.
태풍은 비바람을 동반하며 빠르게 이동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북반구의 대서양과 북태평양 등에서 발생한 태풍을 허리케인, 남반구의 인도양과 남태평양 등에서 발생한 태풍을 사이클론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남반구보다 북반구에서 태풍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높다. 북반구가 남반구보다 온도가 높아서 수증기의 증발이 많이 일어나며, 수증기의 증발과 응결이 반복되는 것이 열대성 저기압이 만들어지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남반구에서 발생한 사이클론은 인도네시아의 섬이나 남태평양의 섬들에 큰 영향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