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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코리아, K 드라마의 힘

by 여행하는 과학쌤

보라보라의 25만 원짜리 에어비앤비는 고급 리조트에 비해 매우 저렴하지만, 가난한 여행객에겐 비싼 숙소다. 보라보라에서 지출이 컸던 우리는 타히티에서 6만 원짜리 초저가 숙소를 잡았다. 타히티에 국제공항이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타히티 섬에 들러야 했다.


처음 타히티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택시비가 10분에 5만 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타히티를 떠나는 날에는 공항과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공항에 붙어 있는 숙소들은 그만큼 비쌌에 우리의 최종 선택지는 공항에서 5km 떨어진 6만 원짜리 에어비앤비였다. 5km 정도는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해가 지기 전이니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물론 이 모든 생각들은 잘못된 신호였다.


타히티 공항에 도착해서 이런저런 검사대를 통과하고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고 나니, 벌써 노을이 깔리기 시작했다. 초행길이라 최단 거리를 찾지 못하고 헤맨 것도 한몫을 했다. 게다가 우리가 간과한 것은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5km가 평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타히티는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이기 때문에 언덕길이 많다. 제주도에 한라산을 중심으로 수많은 오름이 있는 것처럼, 타히티 섬 전체가 커다란 산이다.


우리의 에어비앤비는 산 속에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쪼리 슬리퍼를 신고 여행용 캐리어까지 끌고 있었기 때문에 산길을 오르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었다. 얼마 가지도 못 했는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들개가 짖었다.은 땀에 절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힘들어서 어두운 길이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길 바라며 그냥 걸을 수밖에 없었다.



숙소까지 1-2km 남았을까. 지나가던 트럭이 갑자기 우리를 불렀다. 도움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어린 아들 둘과 함께 집에 돌아가는 아빠처럼 보였다. 그때쯤 우리는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차를 얻어 탈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도,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아저씨가 펄쩍 뛸 듯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이름들을 읊으면서 한국을 너무 좋아한단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자, 영어 말고 Korean으로 말해달란다. 한국어를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냥 한국말을 할 때마다 "오 마이 갓! Korean이 내 눈앞에 있다니!" 하며 좋아하셨다. 싱글벙글인 아저씨 덕분에 숙소까지 차를 타고 가는 것은 물론이고 트럭 뒤에 있던 망고까지 선물 받았다. 정말이지 엄청난 환대였다.


적도 너머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K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저씨를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10년 전쯤 여행 중에 만난 유럽 청년이 Korea를 모른다며 삼성은 Japan 것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행객들은 느낄 것이다. 세계 속에서 코리아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갑자기 든든한 뒷배가 생긴 기분이었다.



보라보라섬, 무레아섬, 타히티섬 등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섬들은 해저 폭발로 만들어졌다. 해저의 마그마가 폭발하면서 흘러넘친 용암이 화산섬을 만든 것이다. 맨틀에는 열점이라는 포인트들이 있는데, 맨틀 위에 떠 있는 지각판이 옆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웃한 지역에 화산섬들이 연달아 생기게 된다. 갓 만들어진 용암 대지는 생명체가 살기 적합한 땅이 아니지만, 이끼류부터 자리를 잡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천이가 진행되어 현재와 같은 생태 환경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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