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3주 차
날이 좋은 가을이다. 가을꽃축제며 여의도 불꽃축제며 세상엔 재미난 일이 한창이고, 집 앞 호수공원에는 온갖 행사가 열리는데, 구경 갈 기력이 없어서 너무 슬프다.
여유 시간엔 쭉 집에 누워 있는다. 집에 있는다고 몸이 마냥 편한 것도 아니라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재미난 걸 보지도, 맛있는 걸 먹지도 못 하고,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다. 아직은 속 안 좋은 고통이 졸린 고통보다 커서 잠도 잘 안 온다.
입덧의 고통에 몸부림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못 먹고, 못 자고, 기력도 없고. 그런데 출근은 해야 한다. 두 발로 버티고 서서 씻을 기력도 없어서 세수도 대충, 샤워도 대충이다. 여전히 핸드워시나 샴푸 냄새도 못 맡겠고, 화장실의 습한 냄새도 못 견디겠다.
우울한 일기만 쓰는 것이 싫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산후 우울증이 위험하다는데 나는 산전에 벌써 우울증에 걸려 버린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은 그래도 배 속에 있을 때가 낫다고 자꾸 말하지만, 나는 그냥 아이를 낳고 나면 이 모든 우울감이 끝날 것 같다.
일단 출산 후에는 휴가를 내고 휴직을 할 수 있으니 출근을 안 해도 된다. 남편도 육아를 같이 할 테니 나 혼자 고통스럽지 않아도 된다. 못 자고 못 먹는 건 어차피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산후에는 아프고 힘들 때 제대로 된 약을 먹을 수 있으니 해결책이라도 있을 게다. 매일매일 남은 달 수를 꼽아 보는데,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갈 길이 구 만리 같다.
그래도 오늘은 집에서 유튜브로 여의도 불꽃축제 영상을 보면서 물개박수를 쳤다.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미소 지은 것 같아서 스스로 깜짝 놀랐다. 즐거운 것을 찾은 게 너무 오랜만이라 세 번이나 돌려보았다. 이렇게나 세상 재미라곤 다 사라진 와중에 태교가 웬 말이겠나.
산전 우울증은 통계적 수치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다.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와 신체적 불편감 때문에 우울 증상을 경험하는 일은 흔하며, 임신 중 사망의 5%는 우울증 때문이다. 일반적인 우울증 치료약은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인데, 태반을 통과할 수 있어 태아의 신경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임산부에게 우울증 치료약은 제한적으로 사용되며, 증상이 심한 경우에 한해 반감기가 짧은 약물을 이용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 트립토판이 포함된 우유 등을 섭취한 후 햇빛을 쬐면 세로토닌을 합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