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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페어에 가긴 너무 일렀어

임신 19주 차

by 여행하는 과학쌤

몇 년 전에 임신한 친구를 따라서 베이비페어 행사에 방문한 적이 있다. 집 근처 행사장까지 산책 겸 가볍게 갔었고, 당연하게도 그 큰 전시장에 있는 온갖 물건들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다. 아기 성장 앨범을 호객하는 부스에서 귀여운 아기 사진만 잔뜩 봤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진정한 소비자의 마음으로 카시트, 분유 제조기, 기띠 등 필요한 제품의 정보와 가격을 비교하겠다고 마음먹고 재방문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일평생 MBTI P형으로 살아온 무계획 인간이다. 꼼꼼하게 비교하는 쇼핑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고, 물건이 필요한 순간 적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을 사는 편이다. 임산부가 되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기를 만날 날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되어서 그런지 당장 알아봐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행사장에서 내내 겉돌았다. 심지어 다른 임산부들에 비해 배가 나오지 않은 편이라 판매원들조차도 나에게 호객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아기띠를 메보고 싶어서 질문을 했는데, 언제가 예정일이냐고 묻더니 대충 설명해주고는 내년에도 베이비페어가 열리니까 그때 다시 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남편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더니 '우리가 제일 쪼랩인 것 같다'고 소곤거렸다. 만삭에 가까운 배를 가진 전투적인 예비 엄마 아빠들 사이에서, 우리만 뭔가 아무것도 모르는 신혼부부 같았다. 친구를 따라서 왔을 때는 오히려 호객 행위도 많이 당하고 사은품도 많이 받았었는데, 만삭 친구 옆에 붙어 다녀서 콩고물이 떨어졌나 보다.


이번에 열심히 설명을 들은 것은 카시트 딱 하나였다. 그나마도 유명 브랜드 브라이텍스에서는 끝없이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못 할 만큼 바빠서 찬밥 신세였고, 한산한 비주류 브랜드에서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꼼한 설명과 응대에 홀려서 여기서 당장 구입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큰돈인데 이렇게 충동적으로 결제하는 게 맞나 싶어서 결국 아무것도 구입하지는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판매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손님들을 잘 알아보는 것 같다. 당장 구입을 할 손님과 가벼운 마음으로 온 손님을 귀신 같이 구분해서 엄한 곳에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이다. 막상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온 우리를 돌아보니, 찬밥 대우 받던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카시트 빼고는 '저것들이 꼭 필요한가..' 싶은 마음이 컸던 우리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나중에 만삭이 된 후에 다시 간다면 육아용품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질지 어떨지 모르겠다.


유아 카시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용품이다. 특히 신생아는 머리의 비율이 큰데 목 근육이 거의 없고 두개골 뼈가 완전히 닫혀 있지 않기 때문에 작은 충돌에도 머리를 다칠 위험이 크다. 생후 1년 동안 뇌가 두 배 가량 성장하면서, 벌어진 두개골이 서서히 닫히기 때문에 영유아는 특히 충격에 주의해야 한다. 뒤를 보게 하여 태우는 영유아 카시트는 머리, 목, 척추를 한 덩어리로 지지하여 충격을 분산시키고 부상 위험을 줄인다. 또 영유아는 폐와 기관지가 좁아서 자세가 조금만 틀어져도 기도가 눌려 질식할 수 있기 때문에, 카시트를 통해 기도가 확보되는 각도를 유지하여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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