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어낸 작품 위에서

by 여행하는 과학쌤

1월의 호주는 한여름이고, 퍼스보다 적도에 가까운 '칼바리'의 기온은 40도에 육박했어. 30도밖에 안 되는 한국의 여름에도 장시간 야외 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40도의 더위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지.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을 뜨기 어려웠고, 모자를 쓰지 않으면 정수리가 뜨겁게 익었어. 땀이 계속 흘러서 얼굴과 등이 하루종일 축축한 상태였는데, 카메라 앞에서는 찝찝함이라곤 없는 듯한 상쾌한 표정을 지어야 했어. 조금만 덜 더웠더라면 온 마음을 다해 그곳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칼바리 국립공원에는 특징적인 붉은 사암층이 펼쳐져 있어. 공룡이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들어진 지층이 오랜 시간 동안 제멋대로 쪼개진 덕분에 층층이 쌓인 깊은 속살이 드러나 있지. 깊고 넓은 이 협곡은 호주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 멋진 곳에서 풍광을 음미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 장시간 촬영하는 동안 정말로 기절할 듯이 더웠거든. 굽이치는 협곡을 보여준다는 z벤드 전망대에서는 땅이 어지럽게 울렁이는 통에 기어이 넘어져서 무릎까지 깨지고 말았어.


그래서 칼바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의외로 국립공원 바깥에서 만난 블루홀 해안이었어. 진물이 흐르는 무릎 그대로 바다에 들어가야 했는데, 시원한 물에 몸을 적시니까 모든 아픔이 금세 잊혀졌지.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작은 웅덩이 덕분에 만조가 되면 짙은 물감을 푼 팔레트처럼 군데군데 바다의 색이 달라 보였어. 다른 지역의 블루홀은 대부분 거대한 싱크홀인데, 칼바리의 블루홀은 자그맣기 때문에 바닷속에 편안히 앉아 있도록 마련된 벤치 같았어.


더위가 사라지니 칼바리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어. 다음날에는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기 전에, 아주 이른 새벽부터 네이쳐스윈도를 찾아갔어. 보물찾기처럼 사암층의 구석에 작게 표시된 화살표들을 따라가다 보면, 테두리만 남기고 깎여 나간 바위를 만날 수 있어. 현대미술가의 감각적인 페인팅 같은 색색깔의 사암층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틈으로 보이는 협곡의 모습이 이곳을 더 완벽한 예술 작품으로 완성시켰어. 자연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수면 아래에 벤치를 선물해 주고 협곡 위에 창문을 선물해 준 거야.



무질서한 자연의 퇴적암 작품


암석은 다양한 광물들이 불균일하게 모여 있는 혼합물이야. 암석이 지닌 불규칙함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무작위적인 힘을 받아서 예상하지 못한 형태를 만들어내곤 하지. 침식되기 쉬운 부분과 단단한 부분이 제멋대로 놓여 있거든.


네이처스윈도의 사암이나 블루홀의 석회암은 퇴적암이기 때문에 퇴적물들의 다양성을 그대로 품고 있어. 열과 압력을 받아 성질이 변한 변성암이나 마그마가 굳어진 화성암은 생성될 때의 온도와 압력 조건에 따라 어느 정도 정해진 광물상을 가지지만, 퇴적암은 퇴적물이 쌓일 때부터 구성이 제멋대로야.


각각의 광물은 약간의 불순물을 제외하고는 한 종류의 원소나 화합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저마다 특성을 가지고 있어. 예를 들어 석고는 사람의 손톱으로도 긁힐 만큼 무르지만, 다이아몬드는 다른 금속을 갈아낼 정도로 경도가 단단해. 석영에 강한 힘이 가해지면 사방으로 산산조각이 나지만, 방해석에 힘을 주면 일정한 방향을 따라서 기울어진 육면체 모양으로 예쁘게 쪼개지지. 방해석은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탄산수나 염산에 의해 쉽게 녹기도 해. 이렇게 다양한 광물들의 배열에 따라서 암석이 깎여나가는 모양이 달라진다는 게 짐작이 가지?


제멋대로의 방향으로 깊이 파인 협곡 (z벤드), 테두리를 남기고 가운데만 쏙 깎여 나간 사암 (네이처스윈도), 일부분만 녹아내려 웅덩이가 된 석회암 (블루홀)은 모두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광물들을 품고 오랜 세월 사투를 벌인 결과물이야. 그리고 예상치 못한 한 순간에 인간은 자연이 오래도록 빚어낸 선물과 마주하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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