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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료 Oct 29. 2020

삶의 방향키를 나누어 쥘 사람



월요일과 화요일은 Y가 쉬는 날이다. 그가 늦잠을 자는 동안 나는 일찍 일어나 차를 끌고 집에서 2KM 정도 떨어진 카페에 가곤 한다. 스스로가 의젓한 어른처럼 느껴지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운전할 때다. 운전대 하나 잡았을 뿐인데 인생의 주도권과 방향키를 잡고 있기라도 한 듯 든든하다. 카페 앞에 도착해 전방주차를 한 번에 해낸 다음 차에서 내려 자동키로 문을 ‘삑’하고 잠근 후 안으로 들어가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할 때 왠지 성공한 어른이 된 기분이다. 물론 현실 속의 내 모습은 추레한 차림으로 세수만 간신히 하고 나와 비몽사몽한 표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지만.                








가구 판매점의 카탈로그 광고 모델처럼 말끔하게 생긴 웨이터가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따듯한 커피를 한 모금 크게 들이키니 내장이 ‘아침이다!’ 하고 기지개 켜는 것 같았다. 커피는 역시 마성의 음료다. 호로록하고 한 모금 더 마신다. 초코 파우더가 올라간 부드러운 두유 거품을 티스푼으로 떠먹는다. 그 한 스푼이 내게는 철분이고 비타민이다. 경쾌한 재즈음악에 섞인 사람들의 백색소음, 카페의 아침 풍경을 감상한다. 노트북을 열고 오늘의 노동을 시작한다. 장강명 작가가 일 할 때 스톱워치를 켜 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나도 일의 효율을 위해 아이폰 스톱워치 어플을 켜놓곤 한다. 초 단위로 시간이 흘러가는 걸 보면 무의식적으로 동작이 빨라지고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중간에 인터넷 쇼핑이나 소셜미디어 구경 같은 삼천포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서너 시간 걸릴 일을 두 시간으로 단축해 준다. Y가 깨어날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늘도 스톱워치를 이용했다. 바짝 집중해 일을 마친 후 Y에게 배달할 플랫 화이트 한 잔을 테이크아웃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맥주를 마시러 교외에 나가려 했던 계획을 변경해 바다로 향했다. 초여름 날씨 같았기 때문이었다. 갈증이 나듯 파도 소리가 간절해졌다. 바다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Y는 덥다며 에어컨을 틀기까지 했다. 그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더운 날의 활기는 기다려진다고 했다. 해변에서 살을 태우는 사람들,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서퍼들, 발바닥을 대기조차 힘들만큼 뜨거운 모래, 아이스커피와 살얼음이 낀 맥주, 수면 아래 반짝이는 햇살. 여름에는 모든 것이 젊어 보였다. 심지어, 백발의 노인들까지도. Y는 요즘 부쩍 거울을 보면서 세월 풍파에 거칠어진 얼굴을 걱정한다. 시간이 가는 게, 나이가 드는 게 가끔은 무섭다면서.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상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일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하나라도 더 얻기를 바라며 평생을 보내다가, 죽을 때나 돼서야 획득한 것을 모조리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억울해하고 통탄하는 것 같다고. 그러게. Y가 대답했다. 고승들의 말처럼, 죽음이 자연으로 회귀하는 일이라면 겨울보다는 여름이고 싶다. 지금의 나는 여름에도 여름 밖에서 살고 있는 것 같으니까. 


 우리는 맥주 대신 노천카페에 앉아 그린 스무디를 마셨다. 태양볕이 등허리를 뜨끈하게 데워주었다. 너는 여름이 될 거야, 푸르고 무성한 여름이 될 거야, 우리를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스무디를 마시고 해변을 따라 난 산책로를 걸었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인 절벽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장관이었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산책로 난간에 기대어 카메라로 바다를 담았다. 바다를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더 바다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은 바닷가로 이어지는 계단 끄트머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가 보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지나온 과거이거나 다가올 미래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연 있어 보이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Y와 나는 갖가지 이야기를 지어냈다.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을 거야. 직장 상사와 싸워 회사를 그만뒀을 거야. 도박 빚을 크게 져서 부모님이 물려준 집을 팔아버린 게 아닐까. 어쩌면 그냥 졸고 있을 뿐인지도 몰랐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니콜 크라우스 작가의 <어두운 숲>이라는 소설이다. 오늘은 이런 문장을 필사했다.     

“바다에서 하는 생각과 육지에서 하는 생각은 달랐다. 그는 부서지는 파도를 지나 더 먼 곳으로 물결에 부드럽게 흔들릴 때만 할 수 있는 생각이 가능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바다에 다녀온 날 이런 문장을 만나니 약간의 전율이 일었다. (책을 읽다 보면 정말로 책이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적재적소에 필요한 문장을 선물해 준다) 

 바다와 육지에서 하는 생각이 각각 다르다니, 맞는 말 같았다. 바다는 단단하게 뭉쳐있던 생각을 여름철 익을 대로 익은 자두처럼 무르게 만든다. 물러진 생각을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과육은 빠져나가고 과즙만 철철 흐른다. 손바닥 위에 남는 것은 자두 씨 한 알. 육지였다면 자두 씨를 어딘가에 심어 또 다른 생각을 키우겠지만 바다에서는 그냥 멀리 던져버린다. 파도에 떠밀려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 물에 끈적끈적한 손도 씻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망을 얻고 싶을 때는 산을 오르고 절망을 버리고 싶을 때는 바다에 가는 것 같다. 



 오늘 Y와 내가 버리고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아올 때는 Y가 운전을 했다. 삶의 방향키를 나누어 번갈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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